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84 – 봉창하다

튼씩이 2019. 10. 25. 08:31

봉창질은 위의 두 가지 뜻 가운데 첫 번째와 관계가 있다. 즉 ‘물건을 몰래 모아서 감춰두는 일’이 봉창질이다. 이름씨로서의 봉창은 모두 한자말이다. ‘애국가 봉창’으로 귀에 익은 봉창(奉唱)은 경건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야, 네 애창곡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한 번 봉창해 봐라” 한다면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될 것이다. 자다가 두드리는 봉창(封窓)은 ‘채광과 통풍을 위해 벽을 뚫어서 작은 구멍을 내고 창틀이 없이 안쪽으로 종이를 발라서 봉한 창’이다. 어떤 촌사람이 방 안에서 자고 있다가 밖에서 누가 부르니 잠결에 문인지 창인지 구분을 못해 봉창을 문일 줄 알고 열려다 내는 소리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그러니 번지수를 잘못 짚고 헛소리한다는 뜻도 되고, 전혀 관계없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한다는 뜻도 된다. 영어로 말하자면 ‘The boot is on the other leg’, ‘오른쪽 신발을 왼발에 신은 것처럼 번지수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와 통한다. 벼의 씨, 즉 볍씨를 다른 말로는 씻나락이라고 하는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는 ‘분명하지 않게 우물우물 말하는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 나락은 벼의 사투리다.


여기서 정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해보자. 바로 이봉창 의사 얘기다. 이봉창은 태극기 앞에서 “나는 적성(赤誠, 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首魁, 악당의 최고 우두머리)를 죽이기로 맹세하나이다”라는 선서를 하고 1932년 1월 8일, 도쿄의 신년 관병식(觀兵式)에 나타난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진 사람이다. 그는 폭탄과 함께 서른세 살의 짧은 생애, 피압박 민족으로서의 서러움 같은 것들도 함께 던졌다. 그를 기려 천안에서는 해마다 ‘이봉창 의사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다.



봉창하다 (동) ① 물건을 몰래 모아서 감추어 두다.


                    ② 손해 본 것을 벌충하다.


쓰임의 예 ★ 모자랐던 관심을 한꺼번에 봉창하려는 듯이 가끔 허풍스러운 애정 표시를 하며 접근했고…. (박완서의 소설 『도시의 흉년』에서)


              ★ 이 개간지는 비록 수재가 간다 하더라도 십년일득으로 몇 해에 한 번만 무사히 넘기면 단박에 몇 해 손해를 봉창할 수 있고…. (한설야의 소설 『탑』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봉창질 – 물건을 몰래 모아서 감춰두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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