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90 – 마닐마닐하다

튼씩이 2019. 11. 1. 08:22


‘닐’ 자가 들어간 말들은 몇 개의 어찌씨를 빼면 거의가 움직씨다. 또 그 움직씨들의 대부분은 ‘가다’라는 뜻의 옛말 ‘닐다’를 바탕으로 한 말들이다. 예를 들어 ‘거닐다’는 ‘가까운 거리를 이리저리 한가롭게 걷다’, ‘우닐다’는 ‘울고 다니다’, ‘도닐다’는 ‘가장자리를 빙빙 돌며 거닐다’, ‘노닐다’는 ‘한가하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놀다’, ‘넘노닐다’는 ‘넘나들며 한가롭게 거닐다’, ‘나닐다’는 ‘여기저기로 오락가락하며 날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거닐다=걷다+닐다’, ‘우닐다=울다+닐다’, ‘도닐다=돌다+닐다’, ‘노닐다=놀다+닐다’, ‘넘노닐다=넘놀다+닐다’, ‘나닐다=날다+닐다’의 관계인 것이다. ‘넘놀다’는 ‘너무 놀다’라는 뜻이 아니라 ‘넘나들며 놀다’라는 뜻이다.


‘부닐다’ ‘다부닐다’ ‘굼닐다’는 ‘닐다’가 붙긴 했지만 ‘가다’라는 뜻과는 거리가 있는 말들이다. ‘부닐다’는 ‘가까이 따르며 붙임성 있게 굴다’, ‘다부닐다’는 ‘바싹 붙어서 붙임성 있게 굴다’라는 뜻이다. ‘부닐다=붙다+닐다’, ‘다부닐다=다붙다+닐다’의 관계다. ‘다붙다’는 ‘사이가 뜨지 않게 바싹 다가붙다’라는 뜻이다. ‘굼닐다’는 ‘몸을 굽혔다 일으켰다 하다’라는 뜻인데, ‘굽다’와 ‘닐다’의 결합인 ‘굽닐다’가 편한 발음을 좇아 ‘굼닐다’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굼닐다’를 ‘물결 따위가 굼실대며 솟았다 잦아들었다 하다’라는 뜻으로 쓴다.


앞에서 언급한 ‘닐’ 자가 들어간 몇 개의 어찌씨는 ‘가닐가닐’ ‘그닐그닐’ ‘조닐로’ 같은 것들이다. ‘그닐그닐’은 ‘가닐가닐’의 큰말로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살갗이 자꾸 또는 매우 근지럽고 저릿한 느낌’을 나타내는 말이다. ‘조닐로(준말은 조닐)’는 남에게 무엇을 사정할 때 ‘제발 빈다’는 뜻으로 쓰는 말인데, ‘적선하는 셈치고’ 또는 ‘좋은 일 삼아’라는 뜻의 ‘좋은 일로’가 세월과 함께 형태를 바꾼 말이다.



마닐마닐하다 (형) 음식이 씹어 먹기에 알맞도록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쓰임의 예 ★ 음식상을 들여다보았다. 입에 마닐마닐한 것은 밤에 다 먹고 남은 것으로 요기될 만한 것이 여남은 개와 한 무리 부스러기뿐이었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부닐다 – 가까이 따르며 붙임성 있게 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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