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접없다’는 독자적인 그림씨로 인정받지 못해 ‘푸접 없다’와 같이 띄어쓰기를 해야 하지만, ‘-없다’가 뒤에 붙어 있는 그림씨(형용사)도 많다. ‘본데없다’는 ‘보고 배운 것이 없다’ 또는 ‘행동이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데가 있다’는 뜻이다. ‘보아서 배운 범절이나 솜씨 또는 지식’을 가리키는 ‘본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마찬가지로 ‘말이나 태도가 똑똑하지 못해 종잡을 수가 없다’는 뜻의 ‘종작없다’는 ‘대중으로 헤아려 잡은 짐작’이라는 뜻의 낱말 ‘종작’에서 나왔다.
‘주책없다’ ‘염치없다’ ‘엉터리없다’ 같은 말들은 이름씨(명사)에서 파생된 그림씨가 거꾸로 이름씨의 뜻에 영향을 끼친 경우다. 주책은 원래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이라는 뜻이지만, ‘주책없다’라는 말이 많이 쓰이다 보니 원래의 뜻과는 백팔십도로 다르게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이라는 뜻까지 갖게 되었다. 염치(廉恥)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이고, 얌치는 염치의 작은말이다. 그런데 얌치의 변형인 얌체는 ‘얌치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엉터리도 ‘대강의 윤곽이나 테두리’가 원래 뜻이지만, 지금은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이나 ‘보기보다 실속이 없거나 실제와 어긋나는 사물’을 지칭하는 낱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가 하면 본바탕인 이름씨의 뜻을 헤아릴 수 없게 된 경우도 있다. ‘행동이 가볍고 참을성이 없다’는 뜻의 ‘자발없다’, ‘때마다 달라져 일정하지 않다’는 뜻의 ‘드리없다’,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는 뜻의 ‘속절없다’, ‘격에 어울리지 않다’는 뜻의 ‘구성없다’ 같은 것들이 그렇다. 자발, 드리, 속절, 구성… 이런 말들의 정체를 밝혀줄 언어의 명탐정 어디 없을까.
푸접 (명) 남에게 인정이나 붙임성, 포용성 따위를 가지고 대하는 성질.
쓰임의 예 ★ 영호는 고국 사람들이 그와 같이 범연하고 푸접 없음을, 고국이 아무 재미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채만식의 소설 『소년은 자란다』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종작없다 – 말이나 태도가 똑똑하지 못해 종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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