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술꾼인 나에게 ‘그럴듯한 술집’의 첫 번째 조건은 당연히 싼 술값이고, 두 번째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우중충하고 황폐한 풍경’이다. 술값이 싼 곳은 대개 그런 풍경을 가진 술집이다 보니 저절로 그런 장소가 익숙해졌는지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내 마음의 풍경이 늘 그렇기 때문에 거기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포장마차는 이 두 가지 조건에 맞아떨어지는데다 한 가지 찾을모를 더 갖추고 있는데, 그건 바로 빗소리다. 포장마차의 비닐지붕이 뚫어져라 내리는 빗소리는 지상의 온갖 소리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다. 쇠못 같은, 북소리 같은 빗소리가 머리 위에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면 70퍼센트나 된다는 내 몸 안의 물들이 일제히 환호하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다. 그런 빗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세상의 일부임을 깨닫거나 또는 받아들인다. 그토록 낯설고 서먹했던 지상의 풍경들이 오래된 옷가지처럼 편안해진다. 비는 아니다(非) 아니다 하면서 내리기도 하고 슬프다(悲) 슬프다 하면서 내리기도 한다. 삶은 늘 아니거나(非) 슬프다(悲). 말하자면 비는 늘 정답만을 말한다. 인생의 모범생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서 포장마차 둥근 의자에 앉아 빗소리에 둘러싸여 있으면 나는 오답만을 열심히 베껴 쓰는 열등생처럼 삶이 아름답게도 보이고 썩 그럴듯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가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내리거나 말거나 나는 그렇다 그렇다 하면서 듣는다. 어쨌거나 비와 나는 친한 사이라 그런 문제를 놓고 이러니저러니 다툴 일은 없다.
이름은 포장마차지만, 거꾸로 마음의 포장을 풀어헤치고 목구멍에 꽂히는 막걸리처럼, 머리통을 두들기는 빗소리처럼 서로에게 직선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그곳, 포장마차. 지금도 포장마차의 주황색 포장을 들추고 들어가면 지난날의 술벗들이 찌그러진 냄비뚜껑 같은 얼굴로 웃고 있을 것만 같아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찾을모 (명) 찾아서 쓸 만한 점이나 가치.
쓰임의 예 ★ 차곡차곡 적어 놓은 1965년 앞뒤 제주섬 물건 값이나 뱃삯이나 잠 값들은, 이제 와서 보면 따로 도움이 안 되겠지만, …지난날 제주섬 사회와 문화를 돌아보는 자료로는 찾을모가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에서 발견한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 그러니 이런 때일수록 ‘콩을 주인공 삼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펼쳐 도시 아이들에게 콩 이야기를 살갑게 건네야 할 찾을모가 생깁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 <부모가 먼저 봐야 할 ‘누에콩’ 그림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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