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95 – 푸접

튼씩이 2019. 11. 9. 13:51


푸접없다는 독자적인 그림씨로 인정받지 못해 푸접 없다와 같이 띄어쓰기를 해야 하지만, ‘-없다가 뒤에 붙어 있는 그림씨(형용사)도 많다. ‘본데없다보고 배운 것이 없다또는 행동이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데가 있다는 뜻이다. ‘보아서 배운 범절이나 솜씨 또는 지식을 가리키는 본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마찬가지로 말이나 태도가 똑똑하지 못해 종잡을 수가 없다는 뜻의 종작없다대중으로 헤아려 잡은 짐작이라는 뜻의 낱말 종작에서 나왔다.

 

주책없다’ ‘염치없다’ ‘엉터리없다같은 말들은 이름씨(명사)에서 파생된 그림씨가 거꾸로 이름씨의 뜻에 영향을 끼친 경우다. 주책은 원래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이라는 뜻이지만, ‘주책없다라는 말이 많이 쓰이다 보니 원래의 뜻과는 백팔십도로 다르게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이라는 뜻까지 갖게 되었다. 염치(廉恥)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이고, 얌치는 염치의 작은말이다. 그런데 얌치의 변형인 얌체는 얌치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엉터리도 대강의 윤곽이나 테두리가 원래 뜻이지만, 지금은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이나 보기보다 실속이 없거나 실제와 어긋나는 사물을 지칭하는 낱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가 하면 본바탕인 이름씨의 뜻을 헤아릴 수 없게 된 경우도 있다. ‘행동이 가볍고 참을성이 없다는 뜻의 자발없다’, ‘때마다 달라져 일정하지 않다는 뜻의 드리없다’,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는 뜻의 속절없다’, ‘격에 어울리지 않다는 뜻의 구성없다같은 것들이 그렇다. 자발, 드리, 속절, 구성이런 말들의 정체를 밝혀줄 언어의 명탐정 어디 없을까.

 

 

푸접 () 남에게 인정이나 붙임성, 포용성 따위를 가지고 대하는 성질.

 

쓰임의 예 영호는 고국 사람들이 그와 같이 범연하고 푸접 없음을, 고국이 아무 재미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채만식의 소설 소년은 자란다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종작없다 말이나 태도가 똑똑하지 못해 종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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