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고요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은 두 가지인 것 같다. 쓸쓸함과 무서움이 그것인데, 쓸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고요한 분위기는 ‘괴괴하다’고 표현한다. 이상할 괴(怪) 자가 들어간 다른 ‘괴괴(怪怪)하다’는 이상야릇하다는 뜻이다. 컴퓨터를 비롯한 복잡한 현대 문명의 이기들 속에서 성장한 신세대들은 괴괴한 분위기를 경험해 보았을까. 그들에게 괴괴함은 쓸쓸한 느낌이 아니라 괴괴(怪怪)하다는, 다시 말해 이상야릇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쓸쓸함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알고나 있을까.
쓸쓸함을 넘어서 무서울 만큼 고요한 상태를 나타내는 그림씨로는 ‘오솔하다’와 ‘휘휘하다’ ‘휘하다’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오솔길은 오솔한 길이라는 뜻이다. ‘후미지다’는 아주 구석지고 깊숙해서 아주 조용하다는 뜻인데, 비슷한 말로는 ‘으슥하다’ ‘호젓하다’가 있다. 으슥하거나 호젓하거나 후미진 곳은 모든 연인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왜 좋아하는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알거니와 모르는 사람도 아는 척하는 것이 낫다. 그러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받을 테니까. 바보 취급을 받는 게 취미나 특기라면 몰라도.
‘가만하다’는 몸이나 움직임이 조용하다는 뜻인데, 가만한 태도를 나타내는 말로는 ‘고즈넉하다’ ‘다소곳하다’ 같은 것들이 있다. 주로 앉아 있는 태도를 가리키는데, ‘고즈넉하다’는 말없이 다소곳하거나 잠잠하다, ‘다소곳하다’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온순한 태도로 말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고개를 ‘조금’ 숙인다는 부분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고개를 귀엽게 조금 숙이는 몸짓을 움직씨로 ‘소곳한다’고 하는데, 소곳하는 몸짓을 나타내는 그림씨가 바로 ‘다소곳하다’인 것이다. 고개를 많이 숙이거나 아니면 불량한 태도로 조용히 말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그림씨는 없는 것 같다. 하기는 불량한 녀석들이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을 턱이 있나. 고개를 많이 숙이는 녀석들은 틀림없이 졸고 있는 것일 테고.
오솔길 (명) 폭이 좁은 호젓한 길.
쓰임의 예 ★ 한길로 나섰다간 자칫 행인들의 눈에 띌 터이므로 주인이 일러준 대로 밭과 밭 사이 돌담으로 에워진 오솔길로 바삐 걸어갔다.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오솔하다 – 사방이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쓸쓸하다.
'지난 게시판 > 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무리해 두고 싶은 우리말 (1) (0) | 2019.11.23 |
---|---|
205 – 타박 (0) | 2019.11.22 |
203 – 시울 (0) | 2019.11.19 |
202 – 중동 (0) | 2019.11.18 |
201 – 한데 (0) | 2019.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