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왕의 이름
조선 국왕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다. 국왕에게는 어릴 적 이름인 아명(兒名), 원래의 이름인 원명(原名), 성인식인 관례를 거행할 때 받는 자(字)와 별도의 이름인 호(號)가 있었다. 이들은 조선시대의 양반사대부도 가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국왕의 원명은 왕세자로 책봉할 때 정해졌다. 종묘와 사직에서 왕세자를 책봉한 사실을 알리려면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순종이 왕세자로 책봉될 때 신하들은 세 가지 후보로 척(坧), 전(㙉), 지(土+示)를 올렸고, 고종이 첫 번째 글자에 낙점하 였다. 자는 성인이 되면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이름 대신에 지어주는 이름으로 해당 인물의 덕을 나타낸다.
존호(尊號), 묘호(廟號), 시호(諡號), 전호(殿號), 능호(陵號)는 국왕과 왕비에게만 주어지는 이름이다. 이중에서 존호는 국왕과 왕비가 살아있을 때부터 받지만, 나머지는 모두 사망한 후에 받을 수 있는 이름이다. 다만 시호는 국가에서 4품 이상 고위 관리나 유현(儒賢)이 사망한 뒤에 그 공덕을 평가하여 내리기도 하였다.
1) 존호
존호(尊號)란 주인공의 덕을 높이 기리기 위해 올리는 이름이다. 국왕이 국가의 변란을 진압했거나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 오랜 기간 즉위했을 때 이를 축하하려고 존호를 올렸다. 생전에 존호를 받으면 상존호(上尊號), 가상존호(加上尊號)라 하였고, 사후에 받으면 추상존호(追上尊號)라 하였다.
조선 초기에 존호는 네 글자였지만 세조 때부터 여덟 글자로 정해졌다. 이에 비해 왕세자에게 올리는 존호는 네 글자, 왕세자빈과 왕비에게 올리는 존호는 두 글자였다. 국왕이나 왕비에게 존호를 올리면 이와 함께 잔치를 여는 일이 많았다. 진찬(進饌), 진연(進宴)과 관련이 있는 의궤를 보면 존호를 올리는 행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1872년(고종 9)에 고종은 태조에게 ‘응천조통 광훈영명(應天肇統 廣勳永命)’, 태종에게 ‘건천체극 대정계우(建天體極 大正啓佑)’란 추상존호를 올렸다. 이 해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으로부터 8주갑 48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고종은 태조와 태종이 조선을 건국했던 해가 돌아왔음을 축하하려고 이런 존호를 올렸다.
2) 묘호
묘호(廟號)는 국왕이 사망한 후에 정해지는 사당의 이름이다. 우리가 국왕의 이름이라고 부르는 ‘태조’ ‘세종’은 바로 묘호이다. 묘호는 국왕별 실록의 이름에서도 제일 앞에 놓였다. 태조의 실록은 ‘태조강헌대왕실록’, 세종의 실록은 ‘세종장헌대왕실록’이라 부르며, 여기서 태조와 세종이 바로 묘호이다.
묘호는 두 글자로 구성된다. 앞 글자는 시자(諡字)로 시(諡)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해진 글자 중에서 결정하고, 뒤의 글자는 종계(宗系, 종가의 계통)와 조공종덕(祖功宗德)의 예제에 따라 ‘조(祖)’나 ‘종(宗)’을 썼다. 대체로 조는 나라를 처음 세웠거나 정통을 다시 일으킨 국왕에게 쓰고, 종은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한 국왕에게 붙였다. 태조, 세조, 인조는 사망한 후 바로 조의 묘호를 받았지만, 선조, 영조, 장조, 정조, 순조, 문조는 종에서 조로 묘호가 바뀐 경우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조’와 ‘종’이란 묘호는 황제만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조선의 국왕은 제후에 해당하므로 조나 종이라 할 수 없고 왕이라 불러야 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조선의 국왕을 황제가 내리는 시호에 왕(王)자를 붙여 ‘○왕’이라 불렀다. 그러나 조선의 국왕과 관리들은 조나 종을 붙인 묘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예치의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면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고, 중국에 대해 조선의 자존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정종은 사후에도 묘호가 없었다. 태종이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아 묘호를 올 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을 보면 정종은 ‘공정왕(恭靖王)’ 혹은 ‘공정대왕(恭靖大王)’으로 나타난다. ‘공정’은 명나라 황제가 준 시호였다. 정종(定宗)이라는 묘호는 숙종 때 추가로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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