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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문과학 - 시간과 절기를 한눈에 ‘앙부일구’

튼씩이 2022. 6. 12. 16:01

2. 시간과 절기를 한눈에 ‘앙부일구’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을 한 해시계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16년(1434년) 과학자인 장영실과 이천, 김조 등에 명하여 처음 만들었으며, 그 해 10월에 종묘 앞과 혜정교(惠政橋)에 각기 1대씩 설치했다. 그 후 조선 시대 말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궁궐과 관공서, 사대부 가옥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앙부일구는 오목한 구형 안쪽에 설치된 막대에 해 그림자가 생겼을 때 그 그림자의 위치로 시각을 측정하는데, 해 그림자를 만드는 끝이 뾰족한 막대를 영침(影針)이라고 한다. 영침(시침)의 끝은 구의 중심이 되며, 막대의 축을 북극에 일치시켰다.

 

영침 둘레에는 시각을 가리키는 시각선이 세로로 그려져 있으며, 그 시각이 12지(十二支)로 표시되어 있다. 특히 세종은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하여 시각마다 쥐, 소, 호랑이, 토끼 등 12지의 동물 인형을 그려 넣었다. 


이러한 내용은 『세종실록』에 잘 나타나 있다. 


세종 16년(1434년) 10월 2일에 처음으로 앙부일구를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한 뒤 시간을 관측하고 아뢰기를 “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각(刻)과 분(分)이 빛나니 해에 비쳐 밝은 것이요,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고 기록하여 세종 대왕 대에 앙부일구를 제작하였음과 백성을 위하는 마음, 그리고 길 옆에 설치한 점에서 공중용 시계의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 19년(1437년) 4월 15일 기사에 “무지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仰釜日晷) 둘을 만들고 안에는 시신(時神)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하나는 혜정교(惠政橋) 가에 놓고, 하나는 종묘 남쪽 거리에 놓았다.”고 기록하여 글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애민 정신이 담긴 과학 기기임을 알 수 있다.

 

 

 

오목한 해시계 내면의 시침 그림자가 시각선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그 그림자는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이를 시계 방향(clockwise)이라 하여 오늘날 시계 바늘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이치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또한 절기도 알 수 있도록 시각선과 직각으로 13개의 절기선을 새겨 넣었는데,이 절기선 양쪽 가장자리 윗면에 24절기가 표시되어 있다. 해는 여름이면 높이 뜨지만 겨울이 되면 비스듬히 떠서 방 안 깊숙이 비춘다. 당연히 그림자도 여름이면 짧아지고 겨울에는 길게 늘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이용한 것이 이 13줄이다. 그 중 가장 바깥 줄에는 시침의 그림자가 가장 길게 되는 곳에 동지(冬至)란 표시가 있고, 제일 안쪽 줄은 시침의 그림자가 가장 짧게 되는 곳에 하지(夏至)라 써 있다. 그 나머지 것들은 소한, 대한, 입춘, 우수로 이어지는 24절기를 나타낸 것이다. 즉, 계절의 변화에 따른 24절기가 그 변화에 따라 해의 기울기가 달라져 시침의 그림자가 변하는 모습을 13줄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앙부일구는 영침의 해 그림자를 통하여 시간과 그 때의 절기를 한눈에 알 수 있게 설계되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오늘날의 만능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앙부일구 시각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서울을 기준으로 하는 정북극의 위치를 정확히 계산해 내었고, 이를 기준으로 앙부일구 내부의 눈금선을 정확히 새길 수 있었다. 앙부일구 윗면에 한양북극고도(漢陽北極高度) 또는 북극출지(北極出地)라 하여 그곳의 위도에 해당하는 각도(37도 39분 15초 등)를 써 넣었는데, 이렇듯이 설치된 곳의 위도와 수평면을 정확히 맞추어 설치함으로써 시각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러한 앙부일구는 조선후기에 휴대용으로 발전 되는데, 19세기 후반에 앙부일구 제작 기술보유자인 강윤(姜潤)과 강건(姜健) 형제가 코끼리의 상아를 이용하여 만든 매우 정교한 휴대용 앙부일구를 들 수 있다. 이 시계는 앙부일구와 나침반으로 구성 되는데, 시각측정 방법은 평지에 시계를 놓고 나침반으로 남북을 정확하게 맞춘 다음 현재의 시간을 측정 하였다. 


해시계는 세계의 어느 고대 문명사회에서나 다양하게 만들어져 왔다. 그렇지만
해의 그림자 길이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시계의 숫자 판이 불규칙하고 시간 사이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다. 하지만 앙부일구는 숫자 판을 오목하게 만들어 이 같은 불편함을 보완한 것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어지지 않은 우리 고유의 정밀 시계 발명품이자 독창적인 과학 문화재로 가치가 큰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