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자

왕릉 가는 길 - 신정일

튼씩이 2022. 11. 13. 10:41

 

 

조선 최초의 왕릉 정릉부터 정조의 건릉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례길, 600킬로미터 조선 왕릉 길을 걷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은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에서도 명당 중의 명당에 위치한 것이 왕릉인데, 가까이에 살면서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중 문화재청은 10여 년의 복원 노력의 결실로 2020년 가을 ‘조선 왕릉 순례길’을 개방했다. 서울 정릉부터 영월 장릉까지 조선 왕릉을 잇는 600km의 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시코쿠 순례길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조선 왕릉 순례길과 각각의 왕릉 내부 숲길을 걸어볼 수 있다. 이 책은 도보답사 전문가 신정일 작가가 조선 왕릉 49곳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130여 컷의 사진과 함께 왕실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땅과 역사, 문화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된다.

 

 

서울 근교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30여 개에 이르는 조선 왕릉 길은 조선 최초의 왕릉 정릉에서부터 정조의 건릉까지 600킬로미터로 이어져 있다. 조선왕조 500년과 그 뒤로 이어진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찾아 천천히 그 길을 따라서 걸어 보자.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산천을 사랑하고 알리는 진정한 홍보대사가 될 것이다. - 6-

 

조신시대 왕실의 묘는 능(), (), ()로 구분된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묘를 말하고, 원은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세소놔 세손빈, ()의 무덤이다. 그리고 묘는 대군과 공주, 그리고 옹주와 후궁, 귀인 등의 무덤이다. 518년 동안 조선을 다스렸던 조선왕조에는 27명의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 왕을 합쳐 42기의 능이 있고, 14기의 원과 64기의 묘가 현존하고 있다. 대부분이 서울과 경기도 인근에 있는데, 신의왕후(태조의 아내)의 제릉(齊陵)과 정종의 후릉(厚陵)이 북한에 있으며, 비운의 임금인 단종의 장릉만 강원도 영월에 있다. - 12-

 

조선 왕릉은 죽은 자가 머무는 성()의 공간과 살아 있는 자가 머무는 속()의 공간이 만나는 곳으로 그 공간적 성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왕과 왕비의 봉분(능침, 능상)이 있는 성역 공간이 있고,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있는 영역인 제사를 지내는 공간, 그리고 왕릉의 관리와 제향 준비를 하는 공간이 있다. (중략) 재실을 거쳐 금천교(禁川橋)’를 지나면, 능역의 시작과 함께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있다. ‘홍문(紅門)’ 또는 홍전문(紅箭門)’이라고도 부르는 이 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을 두고 향어로(香御路 )’라고 부른다. 박석을 깐 이 길의 약간 높은 왼쪽 길은 제향 때 향을 들고 가는 길이라 하여 향로라고 하고, 약간 낮은 오른쪽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므로 어로라고 부른다. - 15-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탈당할 때 순정효황후가 보여준 행동은 많이 알려져 있다. 국권이 강탈될 때 순정효황후가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합병 조약에 날인 할 것을 강요하자 치마 속에 옥쇄를 감추고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숙부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다. 만년에 불교에 귀의한 순정효황후는 대지월(大地月)이라는 법명을 받고서 모든 슬픔을 안고 살다가 19662월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을 마감했다. - 319-

 

이 서삼릉에는 3기의 왕릉 이외에도 3원과 49, 54기의 태실이 있다. 이렇게 모이게 된 데는 우리의 슬픈 역사가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전국에 산재해 있던 조선 왕실의 태실과 왕자묘, 후궁묘와 공주묘, 옹주묘 등을 서삼릉으로 집결시켰다. 왕릉에 만들 수 없는 후궁묘와 왕자묘, 태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결국 왕릉을 공동묘지화한 셈이다. 왕릉으로서의 존엄과 품격을 낮추고자 했던 일제의 의도적인 계획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왕실에서 사용했던 태를 담은 항아리를 비롯한 부장품들을 빼돌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곳에 남은 태들은 원래의 태항아리가 아닌 바뀐 태항아리에 담겨 있거나 다른 방법으로 묻혀 있다. - 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