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문자 쓰기를 몹시 좋아하는 선비가 살았다. 어느 날 처가에 가서 자는데 밤중에 범이 와서 장인을 물어 갔다. 집안에 사람이라고는 장모와 내외뿐인 터라, 어쩔 수 없이 선비가 지붕에 올라가 소리쳐 마을 사람을 불러 모았다. ‘원산대호가 근산 래하야 오지장인을 칙거 남산 식하니 지총지자는 지총 래하고 지창지자는 지창 래하소! 속래 속래요!’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먼 산 큰 범이 와서 우리 장인을 앞산으로 물고 갔으니 총을 가진 사람은 총을 들고 나오고 창을 가진 사람은 창을 들고 나오십시오! 어서요. 어서!> 뜻인즉 이렇지만 알아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누가 총이며 창을 들고 뛰어나올 것인가?“
윗글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과 우리말대학원장을 지낸 고 김수업 선생의 《우리말 사랑 이야기 “말꽃타령”》에 나오는 글입니다. 글깨나 배웠다고 어려운 한자말로 소리쳤는데, 아무도 뛰어오는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하지요. 오늘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77년이 되는 한글날입니다. 그때 세종대왕은 한문에 능통하여 다른 글자가 필요 없었지만, 한문이란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로지 백성사랑으로 훈민정음을 빚어낸 것이지요.
▲ 《우리말 사랑 이야기 “말꽃타령”》, 김수업, 지식산업사
그런데 요즘 신문사에 들어오는 보도자료를 보면 “~에 있는”이라고 쓰면 될 것을 “~에 위치해 있는”이라고 쓰는 것을 자주 봅니다. 이는 쓸데없이 ‘위치해’를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조사하였다”라고 쓰면 되는데도 일본에서 들어온 말 ‘실시’를 더 넣어 “조사를 실시하였다”라고 씁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쉬운 우리말 ‘쉰다, 하나다, 말하다’라고 쓰면 되는 것을 ‘휴관한다, 일환이다, 언급하다’라고 합니다. 그들은 세종대왕과는 달리 한자말을 쓰면 유식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또 우리말 ‘열쇠말, 예술가, 꾸러미‘라고 쓰면 되는 것을 ’키워드, 아티스트, 세트‘라고 버릇처럼 쓰고 잘난 체를 합니다. 제577돌 한글날을 맞아 이제는 쉽고 정겨운 우리말을 쓰는 우리 겨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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