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외래어표기법 이대로 좋은가? 1, 문자의 기능과 훈민정음

튼씩이 2023. 10. 11. 08:36

글자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글자는 말을 적는 기술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글은 우리말을, 알파벳은 영어 등 라틴계 언어를, 한자는 중국어를 적는다는 것을 다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글자들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요?.

 

학자들은 인류가 2백만 년 전부터 일종의 말을 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말만 가지고서는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림을 그려 보충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주 사용하게 된 그림은 좀 간단히 그리게 되었으며 이것이 그림문자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림문자는 자연스럽게 그 그림이 나타내는 형상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슴 그림을 보고 ‘사슴’, 호랑이 그림을 보고 ‘호랑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이렇게 글자에 이름을 붙여 부르다 보니 글자마다 발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곧 그림문자가 소리를 표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발음을 갖는 그림문자, 이것이 상형문자입니다. 수메르 지방에서는 이미 B.C 3500년 전, 그러니까 지금부터 5,500년 전에 상형문자의 일종인 설형문자(쐐기문자)를 썼다는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인류 문명 발생지에서 발전한 여러 가지 상형문자의 초기 모습을 보입니다.

 

▲ 각 문명 발생지에서 사용되었던 상형문자들: 물체의 상형을 보이고 있음

 

상형문자의 역할은 대단했습니다. 상형문자로 왕의 비석에 이름을 새겨 넣고 사연을 적어 넣기도 했습니다. 찬란했던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을 이끌었으며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으로 알려진 길가메시 신화도 4천여 년 전에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새겨진 것이었습니다.

 

당시 상형문자의 이름은 대부분 첫음절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호랑이’는 ‘호’라고 첫음절만 쓰는 식이지요. 따라서 초기의 상형문자는 약 1,000개의 음절문자였습니다. 이 가운데서 같은 음절의 문자들은 하나만 남고 없어져 수 백자로 줄어들고, 다음에는 같은 자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은 모두 하나로 통합됩니다. 예를 들어 가, 거, 고, 구 등은 ‘ㄱ’으로 시작되는 음절을 모두 ‘가’로 통일하고 읽을 때는 늘 쓰는 대로 발음했습니다.

 

그래서 ‘고기’라는 단어가 있다면 이를 ‘가가’로 쓰고 ‘고기’라고 읽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습게 보이지만 이렇게 자음만 적는 문자를 ’자음문자(Abjad)’라 하는데 지금도 아랍어와 이스라엘 문자는 ’자음문자’인데 다만 특수 부호로 일부 모음을 표시해 줍니다. 이들의 문장을 보면 여기저기 꼬부라진 점이 찍혀있는데 이것들이 모음을 표시하는 부호입니다.

 

약 3,000년 전 배를 타고, 다니며 무역으로 살던 페니키아 상인들은 여러 지방을 상대하기 위해 22자의 자음문자를 사용했답니다. 이것을 페니키아 알파벳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거쳐 현대의 라틴 알파벳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한편 인도 지방에서는 자음문자에 모든 필요한 모음을 부호로 처리하여 ‘모음부 자음문자(Abugida)’라고 하는 문자로 발전시켰습니다. 산스크리트를 적는 데바나가리 문자도 ‘모음부 자음문자’인데 세종대왕도 데바나가리를 통달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의 음운체계-아설순치후-가 순서만 바뀐 데바나가리 음운체계와 일치합니다.

 

지금 세계에는 자음문자, ‘모음부 자음문자’와 라틴알파벳을 쓰는 사람이 각각 9억, 12억, 49억 명이며 이밖에 한자가 중국과 일본만 쳐도 15억이 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문자는 고대로부터 그렇게 많이 발전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녹음기는 어떤 소리나 다 기록합니다. 인간의 말은 모두 소리이니까 녹음기처럼 어떤 소리나 다 표기하는 문자 시스템 하나만 있어도 될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어느 나라 말소리라도 적을 수 있도록 훈민정음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