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수업 선생은 전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우리말대학원장과 국어심의위원장을 지낸 분이다. 특히 선생은 토박이말 연구에 평생을 바쳤으며, 쉬운 말글생활을 위해 온 정성을 쏟았다. 그런 선생은 토박이말사전을 만들다가 지난 2018년 우리 곁을 떠났다. 선생이 생전에 펴낸 책 《우리말은 서럽다》는 우리가 왜 쉬운 토박이말을 써야 하는지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 신문은 지난 2014년 《우리말은 서럽다》 본문을 연재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건만 대한민국은 오히려 토박이말을 더욱 홀대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다시 선생의 우리말은 서럽다》를 끄집어내 토박이말을 써야 할 까닭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편집자 말> |
사람에게 가장 몹쓸 병은 제가 스스로 업신여기는 병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다지만, 제가 스스로 업신여기는 병보다 더 무서운 절망은 없으며, 이는 스스로 손쓸 수 없는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겨레는 지난 이즈믄(천) 년 세월에 걸쳐, 글 읽는 사람들이 앞장서 스스로 업신여기는 병에 갈수록 깊이 빠져 살았다. 그런 병은 기원 어름 고구려가 중국 한나라의 글자를 끌어들이면서 씨앗을 뿌리고, 신라가 백제ㆍ고구려와 싸우며 당나라를 끌어들여 당나라 학교인 국학을 세우면서 모를 내고,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신라가 국학 졸업생과 당나라 유학생으로만 벼슬자리를 채우면서 뿌리를 내렸다.
신라는 나라 다스리는 제도와 체제를 당나라 것으로 본뜨고, 땅 이름과 사람 이름도 당나라처럼 바꾸고, 당나라를 우러르고 본받는 일에 매달리고자 제 나라를 ‘시골(향)’이라 불렀다.
이를 이어받아 고려는 송나라를 우러르고 제 나라를 ‘작은 중국(소중화)’이며 ‘동녘 나라(동국)’라고 낮추고, 조선은 명나라를 우러르며 제 나라를 ‘작은 나라(소국)’며 ‘동쪽 언덕(청구)’이라 일컬었다. 중국 사람들이 우리 땅을 ‘동국’이니 ‘청구’니 한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 ‘동국’이니 ‘청구’니 했으니, 얼마나 스스로 내버리고 중국 사람의 흉내를 내었는지 헤아릴 만하다.
▲ 중국이 '청구'라 하자 우리 스스로도 '청구'라 했다. (그림 이무성 작가)
그렇게 살아온 이천 년의 끝은 어디던가? 나라를 남에게 빼앗기고 겨레가 침략자의 종살이에 떨어진 거기였다. 우리를 종으로 부리며 상전 노릇을 하던 침략자에게서 “조선 놈은 어쩔 수가 없다니까!” 하는 소리까지 듣던 거기였다. 그런 지옥이 어찌 하루아침에 오겠는가? 이천 년 세월이 하루씩 쌓여서 마침내 찾아온 끝장인 것이다.
거기까지 오는 동안 맨 처음은 고조선이 무너지면서 요하 서녘을 중국 한나라에게 빼앗겼으며, 다시 고구려가 무너지면서 만주 절반을 중국 당나라에게 빼앗기고, 발해가 무너지면서 만주 모두를 잃어버리고, 그때부터 반도 안에만 갇혀서 여태까지 일천 년이 넘도록 만주 너머를 밟아 보지 못했다. 게다가 줄곧 우리를 우러러보며 배워 가던 일본의 침략을 받아 칠 년 동안 짓밟히고, 머지않아 다시 침략해 온 그들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겨 종살이하기에 이르렀다.
그뿐 아니라 중국 역사책만 읽으며 얼을 빼앗겨, 고조선 시절과 고구려 때까지 함께 어우러져 같은 삶으로 꽃피우며 살아온 겨레를 ‘오랑캐’라 부르며 팽개쳐 버렸다. 고구려 겨레의 하나였던 거란이 일어나 요나라를 세워서 발해를 싸잡고 고조선 땅을 다시 찾으며 중국으로 들어가 이백 년을 다스려도 반기기는커녕 중국을 따라 오랑캐라 부르며 고개를 돌렸고, 발해를 세웠던 여진 겨레가 일어나 금나라를 세워 요나라를 싸잡고 다시 고조선 옛 땅을 되찾아 중국으로 들어가 일백 년을 다스려도 마찬가지로 오랑캐라며 고개를 돌렸다.
임진왜란으로 동아시아가 뒤흔들린 다음 다시 여진 겨레가 청나라를 세워 고조선 옛 땅에다 중국 천하를 모두 틀어쥐고 삼백 년을 다스려도 우리는 끝내 저들을 오랑캐라 부르며 언니, 아우로 여기지 않았다. 우리가 중국에 얼을 빼앗기지 않고 고조선과 고구려까지 이어 온 배달겨레의 삶을 지켰다면, 우리의 역사는 마땅히 고구려에서 발해, 발해에서 요나라, 요나라에서 금나라, 금나라에서 청나라로 이어진 북녘 조선의 역사뿐만 아니라, 신라에서 고려,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진 남녘 삼한의 역사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우리가 어찌 섬나라인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종살이까지 맛보게 되었겠으며, 오늘날 중국이 요하 문명을 저들 문명의 뿌리로 싸잡는 동북공정을 바라만 보고 있겠는가!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사진이 있는 이야기 >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테마쓰 판사, 감옥에서 박열 혼례식 올려줘 (1) | 2023.10.15 |
---|---|
(얼레빗 제4867호) 여성 예복 장삼(長衫), 국가민속문화유산 돼 (1) | 2023.10.15 |
(얼레빗 제4866호) 돈아!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느냐? (0) | 2023.10.13 |
(얼레빗 제4865호) 남쪽에 신라, 북쪽에 발해 <남북국시대> (1) | 2023.10.12 |
외래어표기법 이대로 좋은가? 1, 문자의 기능과 훈민정음 (2) | 2023.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