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414. 조선시대 종을 거느리지 못한 양반, 나들이도 못했다

튼씩이 2016. 10. 27. 13:43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다른 얼레빗 모두 보기

단기 4349(2016). 10. 27.



“대개 사족(士族)이 서인(庶人)과 다른 점은 종의 소유에 있습니다. 지금 조정의 신하로서 종이 많은 사람이 얼마 없는데, 그나마 하루아침에 도망해 흩어져서 사라져버리면 사족이 그 집안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니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 《성종실록》 14년(1483) 12월 18일 “우리나라 노비에 관한 법은 그 유래가 오래 되었으니 사대부는 이들에 의존하여 살아왔습니다. 대개 농토는 사람의 목숨이고, 노비는 선비의 수족이니, 그 중요성이 서로 같아서 어느 한쪽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 《세조실록》 14년(1468) 6월 18일

위처럼 조선시대 양반들은 종과 말이 없으면 행세를 하지 못했습니다. 양반이 나들이를 할 때 종과 말이 없으면 남에게 빌려오기라도 해야 했습니다. 조선 후기 이덕무(1741 ∼ 1793)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라서 이를 빌리는 것조차 힘겨워 했지요. 그는 말합니다. “남의 말이나 나귀를 빌린 것은 단지 예닐곱 차례뿐이고, 그 외는 모두 걸어다녔다. 혹시 남의 하인이나 말을 빌리면 그들이 굶주리거나 피곤할 것을 염려하여 마음이 매우 불편해지 차라리 걸어 다니는 것이 편했다." - 《청장관전서》 이목구심서 6

말이 없으면 소라도 타고 아니면 걸어서 갔지만 노자를 지고 가는 종은 꼭 앞세워야 길을 떠날 수 있었지요. 종은 좋은 벼슬아치의 품위를 유지시켜주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땔나무를 할 종이 없으면 언 방에서 그냥 잠을 잤고, 남에게 곡식을 꾸러 보낼 종이 없으면 그냥 굶주리는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조선시대 양반들에게 있어서 종 소유는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옛 얼레빗 (2012-10-30)



2404. 한 도공의 미적 감각이 빚은 “꽃무늬참외모양주전자”

.


그릇은 우리 삶에 필요한 먹을 것, 마실 것은 물론 살아가는데 요긴한 것들을 담는 도구이지요. 오늘 날에는 값싼 플라스틱 따위로 만든 것도 많고 도자기라 하더라도 공장에서 대량생산 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같은 것은 만든 이의 마음과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고려청자 가운데 강진청자박물관에서 가장 귀한 작품을 꼽는다면 “꽃무늬참외모양주전자(청자상감모란국화연화문 과형주자)"가 있지요. 이름처럼 이 청자는 참외 모양의 몸통에 세로로 골을 파낸 뒤 손잡이와 물대를 붙인 주전자입니다. 참외 줄기 모양을 하고 있는 청자주전자의 손잡이도 재미있습니다. 또한 물을 따르는 물대는 연잎을 말은 것처럼 잎맥을 오목새김(음각)하여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꽃무늬참외모양주전자”는 13세기 작품으로 고려시대 귀족사회의 화려함과 서정적 취향을 엿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을 만든 이름 모를 도공의 뛰어난 미적 감각이 빚어낸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지요.

강진청자박물관은 한국 청자의 변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설립한 국내 유일한 고려청자 테마 박물관입니다. 1997년 9월 3일 개관하여 소장유물로는 완전한 유물 175점, 조각 3만여 점이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강진에 가면 청자박물관을 비롯하여 고려청자도요지와 다산 정약용 유적지, 영랑생가 같은 곳도 함께 둘러 볼 수 있어 즐거운 나들이가 될 것입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koya-culture.com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