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는 약 13.5m나 되는 웅장한 규모의 국보 <경천사 십층석탑>이 있습니다. 이 십층석탑에는 전체에 부처, 보살, 사천왕, 나한, 그리고 불교 설화적인 내용이 층층이 조각되어 있지요. 이는 모든 불교의 존귀한 형상을 모은 일종의 불교적 만신전(萬神殿)으로 고려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3차원적인 불국토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평가입니다. 경천사 석탑은 1348년(충목왕 4) 세웠는데 원래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었습니다.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경천사는 고려 왕실의 기일에 종종 추모제를 지냈던 곳으로 왕실의 왕래가 잦았던 절입니다.
▲ 국보 <경천사 십층석탑>, 고려 1348년, 대리석, 높이 13.5 cm, 국립중앙박물관
그런데 이 경천사 석탑은 우리 문화유산의 수난사를 대표하는 종요로운 유물입니다. 1907년 순종의 가례에 일본 특사로 온 궁내대신 다나카 미스야키가 당시 주민들이 저지했지만, 헌병들의 총칼로 위협하여 일본으로 빼내 갔습니다. 석탑 반출은 <대한매일신보>에 10여 차례 이상의 기사와 논설이 게재되어 석탑 반출의 불법성을 알렸습니다. 특히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의 발행인인 영국인 베델은 일본의 영자신문과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에 불법 약탈을 알렸으며,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로 파견되었을 때도 현지 신문에 석탑 밀반출을 폭로하였지요. 이렇게 국제적으로 문제가 커지자 결국 1918년 11월 15일 석탑은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 반환된 경천사 석탑은 당시 기술로는 재건립이 어려워 경복궁 회랑에 보관되었다가 1960년 훼손된 부재를 수리해 경복궁에 세워졌고,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석탑은 다시 해체돼 문화재연구소에서 10여 년에 걸쳐 보존 처리한 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재개관 때 현재의 전시실에 100여 년 만에야 비로소 석탑의 그 웅장한 모습으로 그 위용을 다시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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