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의 주막
"1916년 무렵만 해도 조선에서는 거의 주막에서 술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 당시 주막은 12만 개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일제의 간섭으로 차츰 줄어서 1919년에는 7만여 개, 1925년에는 3만여 개, 1930년에는 5,000개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술 수요에 맞추지 못하게 되자 일제는 군 단위에 10~20개의 이른바 주류배급소를 만들었는데 조선 전체로는 5,000~6,000여 개에 이르렀지요."
1932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주조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내용에서 보면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술과 음식을 함께 팔던 주막 12만 개가 15년 만에 5,000개로 줄어들어 버린 것입니다. 주막은 오늘날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일정 거리마다 있었던 쉼터죠. 한나절 걷는 시간, 아침에 출발하여 점심 무렵에 도달하는 거리에는 어김없이 주막이 있었습니다. 온 나라 산밑과 강나루와 장터와 마을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던 주막이 일본강점기를 지나면서 파괴되어 버린 것입니다.
20세기 초반까지 우리 술 문화는 양조장이 아닌 주막과 가정집이 이어왔습니다. 특히 집에서 제사지낼 때와 명절 때 그리고 농사지을 때 술을 빚어 마셔온 것입니다. 특히 제사에 쓸 술은 집에서 정성껏 담그는 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의 술문화가 1909년 일본인이 마음대로 주세법을 만들고 1916년에 강화된 주세령이 발령되면서 파괴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최저생산량을 규정하여 이에 미달하는 제조장을 없애거나 통합했지요. 주류 제조장의 술과 자가용 술을 분리하여 자가용 술 제조를 위축시키고, 술 제조장에서 음식과 함께 파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주막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일본에 가면 지금도 엄청나게 많은 전통술이 만들어지고 팔립니다. 그에 견주면 우리의 전통술은 겨우 명맥을 유지한 정도인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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