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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이나 양반가에서는 유모 곧 “젖어멈”이 아이를 키우는 게 하나의 풍습이고 문화였습니다. 아이는 “젖어멈”을 친어머니처럼 여기며, 젖어멈의 품성을 그대로 닮는다는 게 옛날 사람들의 믿음이었지요. 그 때문에 유모를 고르는 것은 왕실이나 가문을 길이 보전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특히 왕세자의 “젖어멈”은 왕세자의 첫 스승을 뽑는 의미였기에 유모나 보모로 부르지 않고, “자사(子師)”라 부르고, 임금의 “젖어멈”은 “봉보부인(奉保夫人)”이라는 종1품 벼슬을 내리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젖어멈”의 역할은 첫 스승과 함께 병이 걸리면 병을 치료하는 몫까지 담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젖어멈”을 고를 때는 “젖어멈”의 잔병이 아이에게 전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 건강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아이가 병에 걸리면 아이에게 약을 직접 먹일 수 없기 때문에 “젖어멈”이 아이에게 먹일 약을 대신 먹었지요. 그러면 아이는 유모의 젖을 통해 치료약을 간접적으로 먹게 됩니다. 따라서 “젖어멈”의 젖은 의료기구의 하나이 자 의약품인 셈이었습니다.
때문에 “젖어멈”은 왕실과 양반가를 지탱해 가는데 매우 중요한 직업이었지요. 이에 왕실의 “젖어멈”은 그의 자식이나 남편에 대해서 속전(贖錢, 죄를 면하고자 바치는 돈)을 면제하고 면천(免賤,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나 평민이 되게 하는 것) 해주기도 했습니다. 또 양반가에서는 신부의 예단 품목에 유모의 예단도 들어있었지요. 조선 중기 인조 때 문신이자 당대의 이름난 학자였던 택당 이식(李植)이 남긴 유훈 가운데는 “젖어멈의 무덤에 한해 두 번 제사를 지내도록 하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유모는 왕가나 사대부가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이자 특별대우를 받았던 직업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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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속풀이 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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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과 기교 대신 절제된 감정으로 노래한 박문규 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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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박문규 명인이 들려주는 전통가곡 발표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다. 1월 23일 늦은 5시,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 집(코우스-KOUS)에서 황숙경과 당대 최고의 반주진이 함께 펼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1950~60년대 적(), 소금(小), 단소(短簫) 등,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를 가방에 넣고 만원 버스나 전차를 타면 여러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게 되어 신경이 쓰였다는 이야기, 국악과 국악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나 몰이해는 상상을 초월했던 때 박문규는 KBS 공개 장기(長技)대회에 출전해서 소금을 불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또 그는 주전공이었던 피리 말고도 가곡이나 시조, 가사와 같은 정가, 정악과 민속악의 반주 또한 일품이었으며 피아노도 열심히 쳤고, 창작음악의 장고 반주는 거의 그의 차지였다는 이야기, 그가 국악고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학생들이 그를 <박토벤>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적 재능이나 실력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을 별명이란 점, 그가 준비했던 노래는 전통의 가곡으로 여류 명창 황숙경과 함께, 그리고 당대 최고의 반주진이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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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이 날 가곡 발표회장 문화의 집은 강추위 속에서도 전문가, 애호가 등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가곡의 음악회는 순서대로 물 흐르듯 여유 있게 진행되었으며 첫 순서는 남창 초수대엽(初數大葉)이었다. “동창이~”로 시작되는 노래는 느짓한 속도에 따라 노래와 장단, 각 악기들이 호흡을 맞추며 유유히 흘러가기 시작하였고 이어지는 더 느린 속도의 이수대엽 <강호에>서는 가곡의 진수를 맛보는 느린 박자가 이어졌다.
2곡이 끝난 다음, 글쓴이는 가곡이란 어떤 노래이고, 박문규는 누구이며, 그리고 가곡의 전승 현황에 대해 간단하게 해설을 하였다. 이어서 황숙경의 여창우락 <바람은>과 언락 <벽사창>, 여창반엽 <남하여>가 이어졌고 2부에서는 계면초수 <청석령>, 삼수 <석양에>, 평롱<북두칠성>, 편락 <나무도>, 편수 <모란은>, 언편 <한송정> 마지막 곡인 태평가(太平歌)까지 잠간 사이에 흘러갔다.
중간 중간에 남창과 여창이 교창으로 진행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사죽(絲竹)의 반주가락은 목소리와 멋있는 조화를 이루며 진행되었다. 진정 전통가곡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란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밤이었다.
전통가곡에서 찾을 수 있는 미적인 특징이라면 먼저 음악적 형식에서 발견되는 세련미와 정제미가 있는 노래라는 점이다. 남창 26곡의 전체적인 큰 틀로 보면 느리게 시작해서 보통의 속도를 지나 끝 부분에서는 빠르게 진행되는 형식, 즉 만(慢)-중(中)-삭(數)의 형식이다. 다시 말해 삭대엽 계열의 노래들은 느리게 부르고, 농(弄)이나 낙(樂)조에 서는 보통의 박자로 변화하며, 편(編)에 이르면 빨라지는 형식이다. 다만 최종곡인 태평가는 처음의 속도로 되돌아가 종지하기 때문에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 각의 악곡 구성은 모두 5장으로 분장되는 형식을 취하며 1장을 부르기 전에는 반주악기들의 전주곡인 대여음(大餘音)이 나오고 3장과 4장 사이에는 중여음이 반드시 들어간다는 정제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이라면 장단형에서 발견되는 질서미가 있다는 점이다. 가곡의 장단은 16박자형과 10박자형의 두 종류가 있는데, 어느 형태의 장단도 장고점의 변형이나 생략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장단을 이끌어 가는 장고 연주자는 즉흥적인 연주를 불허하며 원점을 지켜나가야 한다. 세 번째는 선율에서 느껴지는 유장미의 멋이다. 가곡의 진행은 근접이동이나 수평에 가까운 평이한 선율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평이한 선율 진행은 강약이나 역동적으로 표출력을 강화시켜 유장미가 넘치도록 표현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창법이나 발음법에서 천근의 무게를 느끼게 되는 장중미가 있다는 점이고, 다섯 번째는 관현반주와 협동, 화합, 상생을 연출해 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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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가곡 속에 내재(內在)되어 있는 이러한 요소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 속에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온 순박한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과 철학이 농축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국가에서는 일찍이 가곡을 무형의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 중이고, 얼마 전에는 유네스코에서도 세계 무형유산으로 등재하였던 것이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에서 가곡은 점차 소외 되어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박자가 느리고 창법이 전통적이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교육현장에서 가곡을 소홀히 취급해도 좋은 명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보존 정책을 세워야만 한다. 오랜 종안 교육 정책을 담당해 온 사람들의 무성의로 인해 한국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가곡을 비롯한 전통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이나 귀를 열어 주기 못했던 것을 어찌 할 것인가! 전통가곡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 우리사회의 책임이 크다 아니할 수 없다.
이 날 박문규의 가곡창은 우선, 발음이 분명하고 발성에 있어서 역동성이 돋보이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소리에는 강약의 변화가 뚜렷하고 잔가락이나 시김새의 처리가 자연스러우며 반주와의 조화 등 음악적 균형을 제대로 이루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의 노래는 화려하고 난삽한 기교보다는 절제된 감정으로 처리하는 가락의 연결이 자연스럽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고 화평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세상의 영욕(榮辱)이란 한낱 뜬구름에 불과한 것임을 조용히 일깨워주는 귀한 가르침 같았다.
무릇 악(樂)이란 성(聲)이나 음(音)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대상이라고 했다. 가곡이야말로 성음(聲音)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데 그치지 않는 음악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감정을 절제하며 풍속을 건전하게 가꾸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선하고 화평하게 만들어 주는 음악, 촉급하지 않은 장단과 감정을 절제시킨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면 듣는 사람 모두가 곧 하나가 되는 음악, 서로를 인정하고 신뢰하게 만드는 훈훈한 노래, 이것이 또한 가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박문규의 가곡 발표회를 통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확인한 것은 전통의 가곡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맑고 밝게 정화시켜 갈, 참되고 아름다운 노래라는 점이고, 그래서 가곡의 생명은 영원할 것이며 그 향기 또한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모처럼 듣기 어려운 귀한 시간을 만들어 준 박문규와 황숙경 명창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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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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