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4월 27일 - 비운의 장군, 탄금대에 뛰어내리다

튼씩이 2018. 4. 27. 11:48

우륵, 박연, 왕산악은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꼽히는데 이 가운데 우륵은 《삼국사기》에서 가야국 출신으로 가실왕의 명을 받아 12현금인 가야금을 만들고 수많은 작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는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이웃나라 신라에 망명합니다. 진흥왕이 기뻐 우륵을 충주에 살게 했는데 그곳을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라 불렀습니다.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아름다운 소나문 숲이 울창한 이곳은 2008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42호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경관이 자랑입니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왜군과 전투하다 투신한 아픈 역사를 간직하기도 한 곳이기도 합니다.



신립(申砬) 장군은 1546년에 태어나 22세에 무과에 급제한 뒤 여진족을 두만강 건너 소굴까지 가서 소탕하여 함경북도 병사에 이어 평안병사에 이르는 등 그 용맹함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46세에 터진 임진왜란 때 군사 8,000여 명을 거느리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行長)의 군대를 맞아 탄금대에서 격전을 치렀습니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의 열두대라고 하는 절벽은 신립장군이 전쟁 때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온 힘을 다해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신립장군은 그만 달천강에 몸을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신립의 충의심을 기리는 탄금대비를 비롯하여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악성우륵선생추모비가 들어서 있으며 가야금의 대명인 우륵과 신립장군의 넋을 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4월 27일은 우국충정을 기리던 신립장군이 더러운 왜놈들의 칼을 피해 몸을 날려 자결한 날로 기암절벽을 휘감아 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은 그날의 슬픈 역사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