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서울 한복판에 동상을 세워 기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구국의 영웅이자 우리 겨레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공은 1545년 4월 28일 태어나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지금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단 말을 하지 마라. 군사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53살의 길지 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충무공은 병조판서 김귀영이 딸을 자신에게 시집보내려고 중매인을 보내자 그 자리에서 중매인을 돌려보냈습니다. 이처럼 공은 권세와 돈을 따라다니는 아첨배에 붙어 부정한 방법으로 출세하고자 하는 일을 단호히 거절할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던 분입니다.
충무공의 이름은 이순신(李舜臣)인데 충무는 인조 21년(1643) 장군의 순국 뒤 내린 시호(諡號)입니다. 충무공은 22살에 들어서 무예를 연마하기 시작하여 32살 때 비로소 무과에 올랐습니다. 식년무과에 합격하고는 “대장부로 세상에 나와 나라에서 써주면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할 것이요, 써주지 않으면 야인이 되어 밭갈이하면서 살리라(丈夫出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고 말합니다. 이는 임용발령을 조용히 기다리며 한 말로 자신의 보직이나 출세를 위하여 권문세가에 아첨하거나 영화를 탐내지 않기로 한 결심으로 보입니다.
충무공이 쓴 <난중일기>는 그의 개인적 전장체험뿐만 아니라 전쟁 전의 상황과 임진왜란 당시의 전황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사료로서 높이 인정받고 있지요. 예를 들어, 임진년의 일기를 간단히 살펴보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이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전쟁준비에 충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나라의 제삿날에도 업무에 임하는 열정, 진지와 병영관리에 게으르거나 소홀한 부하관리를 문책, 벌하는 엄중함도 보입니다. 또한 거북선의 제작과정과 개전초기의 전황, 4차 출전(부산포 해전)까지의 전투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 승리하였다 하여 소홀히 생각하지 말고 다시 정비해두었다가 변경의 정보를 듣는 즉시 전장에 나아가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하라.”
1592년 6월 14일 4차 당항포해전에 승리하고 나서 충무공이 한 이 말씀은 우리의 본보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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