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해온 전통혼례를 보면, 신랑이 자신의 집에서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 집에 가서 혼례를 올리고 그곳에서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래서 “장가든다”라는 말이 나왔는데 고구려의 데릴사위제도 그런 전통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습속은 고려 말 관(冠), 혼(婚), 상(喪), 제(祭), 곧 사례(四禮)에 관한 규정을 담은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들어오면서부터는, 그 규정대로 신부 집에 가서 혼례를 치른 다음 바로 신부를 데려오는 것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관습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지요.
율곡 이이를 낳은 조선 중기의 예술가인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남편도 혼인한 뒤 한동안 강릉 처가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중종실록》 24권, 11년(1516) 에는 “친영(사위가 처가로 가는 것)의 예(禮)는 좋은 법이고 아름다운 뜻인데도 사대부들이 아직도 구습에 젖어 거행하는 사람이 없으니, 법을 세우지 않으면 끝내 시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법사로 하여금 규찰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이는 ‘장가든다’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라는 상소이지요.
‘장가든다’는 표현은 손진태 씨의 《조선솔서혼제고(朝鮮率壻婚制考)》에도 나옵니다. 그는 1932년 여름 평안도를 여행하는데 그곳 성천(成川) 지방의 차원술(60살)이라는 노인에게서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데릴사위제도가 있었다는 증언을 듣게 됩니다. 차노인은 “당시는 일반으로 데릴사위제도가 많았으며 특히 화전민 사이에는 비록 아들이 있어도 딸을 위하여 데릴사위를 들였으며 사위는 짧게는 5~6년 길면 십수 년간 처가에 생활하였다”라는 사실을 논문에 싣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시집간다’는 말처럼 여자가 남자 집으로 가서 살지만 예전에는 남자가 ‘장가가는’ 형태로 혼인이 이뤄졌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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