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더불어 한국인들의 뇌리에는 원폭의 도시로 기억되는 도시다. 미군기지가 있는 사세보를 떠나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나가사키 평화 기념관 안팎에서는 8월 9일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추도식을 위한 무대장치며 꽃장식으로 한창이라 다소 어수선했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가장 큰 피해국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임에도 일본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맞은 원자폭탄 세례의 ‘피해국 일본’으로 가르치려고 ‘국립 나가사키 원폭 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을 세웠다.”
나가사키 자료관의 한글판 홍보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건립 이유를 밝히고 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한순간에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시민과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다행히 목숨만은 건진 피폭자들에게도 평생 치유될 수 없는 마음과 몸의 상처, 방사선으로 말미암은 장해를 남겼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과 고통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바친다. 우리는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의 실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후세에 전할 것이며 이러한 역사를 교훈 삼아 핵무기 없는 영원히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할 것이다. 1996.4.”
이 글은 민족문제연구소 누리집에 ‘나가사키의 오카마사하루 씨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실린 ‘나가사키 참관기’ 일부입니다. 언뜻 보면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세계 구축이라는 말이 상당히 인도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문제의 핵심을 두 가지로 보면, ‘왜 나가사키는 핵폭탄을 맞았나?’, 또 하나는 당시 ‘강제연행으로 나가사키에 있던 조선인들의 피해보상과 치료문제는 어찌 되었나?’ 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이지요.
나가사키기념관 안에는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멈춘 찌그러진 시계가 걸려있고 폭탄이 떨어지던 그날의 피해를 고스란히 재현해둔 모습이 여러 전시 공간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시실마다 발 디딜 틈 없이 일본 전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단체로 온 어린이들이었습니다. 기념관을 안내하는 인솔 교사들은 말합니다.
‘여기 까맣게 탄 도시락이 있지요? 원폭을 맞은 곳에서 700미터나 멀리 떨어져 있던 이와키마치 초등학교에 다니던 14세 츠츠미 양의 도시락이랍니다. 새까맣게 탔지요? 원폭은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미군이 폭탄을 떨어뜨린 거랍니다.’
자신이 핏덩어리이던 한 살 때 아버지가 강제연행당한 기억이 있는, 이젠 예순을 훌쩍 넘긴 한국인 박남순 씨는 나가사키 평화기념관을 나오며 말했습니다. “여긴 평화 박물관이 아녀, 은폐기념관이지”. 해마다 8월 9일 전후해서 일본인들은 원폭피해를 부각해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연다고 법석입니다만 한국인들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의 희생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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