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8월 11일 - 혼천의로 하늘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튼씩이 2018. 8. 11. 19:41

“정초, 이천, 정인지, 김빈 등이 혼천의(渾天儀)를 올리매, 임금이 그것을 곧 세자에게 명하여 이천과 더불어 그 제도를 질문하고 세자가 들어와 아뢰라고 하니, 세자가 간의대(簡儀臺)에 이르러 정초, 이천, 정인지, 김빈 등으로 더불어 간의와 혼천의의 제도를 강문(講問)하고, 이에 김빈과 내시 최습(崔濕)에게 명하여 밤에 간의대에 숙직하면서 해와 달과 별들을 참고해 실험하여 그 잘되고 잘못된 점을 아뢰게 하고, 인하여 빈에게 옷을 하사하니 밤에 숙직하기 때문이었다. 이로부터 임금과 세자가 매일 간의대에 이르러서 정초 등과 함께 그 제도를 의논해 정하였다.”



위 내용은 <세종실록> 61권, 15년(1433) 8월 11일 “정초, 이천, 정인지 등이 혼천의를 올리다”에 있는 기록입니다. 여기서 혼천의(渾天儀)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는 기구로 선기옥형, 혼의, 혼의기라고도 하지요. 1433년 정초(鄭招), 정인지(鄭麟趾) 같은 학자들이 고전을 조사하고 이천(李蕆), 장영실(蔣英實)이 그 제작을 감독했습니다.


농업을 나라의 근간으로 여긴 조선시대에는 농경에 필요한 절기를 정하여 알리는 일인 관상수시(觀象授時)를 임금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래서 세종은 흠경각을 편전인 천추전 가까이 짓고, 수시로 드나들며,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여 농사지을 때를 알아 백성에게 알려주고,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왕도정치의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또 세종은 흠경각루에 갖추어놓은 춘하추동의 풍경과 일곱 달의 농사짓는 모습을 보며 백성사랑과 농사의 중요성을 늘 되새겼지요. 그래서 앞의 기록처럼 세종과 세자가 날마다 간의대에 이르러서 정초와 같은 학자와 그 제도를 의논한 것입니다. 세종의 백성사랑이 엿보이는 발명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