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에 있는 천관사터는 신라화랑 김유신(金庾信, 595~673)과 관계 깊은 곳입니다. 평소 기생 천관의 집을 자주 찾던 유신은 어머니의 따끔한 훈계 한 마디에 천관과 왕래를 끊습니다. 그러나 유신의 결심을 알 리 없는 유신의 말은 버릇처럼 술에 취한 김유신을 천관의 집까지 태워서 갔지요. 이에 유신은 자신의 결심을 헛되게 했다 하여 말의 목을 베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천관은 그런 유신을 사모하다 못해 목숨을 끊었습니다. 훗날 김유신은 옛 여인을 위하여 천관의 집터에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배어 있는 곳이 경북 경주시 교동 244번지 천관사(天官寺)터입니다.
김해(金海) 김씨로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손인 김유신은 기생 천관과의 일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철저한 자기 관리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장군입니다. 당나라 소정방이 이끈 군대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뒤이어 고구려 정벌에도 나섰던 인물이지요. 이러한 업적으로 그와 관련한 신기한 이야기들이 설화와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죽은 뒤에 신격화(神格化)되어 민간과 무속에서도 산신 또는 서낭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습니다.
강릉 단오제(端午祭)와 관련하여 대관령산신당(大關嶺山神堂)에서는 김유신을 산신으로 모시고 있지요.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계묘년(1603) 여름 내가 명주(溟州)에 있었는데, 그 당시 명주사람들은 5월 길일을 택하여 대관령 산신을 맞이했다. 내가 수리(首吏)에게 묻자 “이 신은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입니다”라고 했다. 이 신이 지금까지 영험하기 때문에 고을 사람들이 신봉하여 해마다 5월 길일에 번개(幡蓋)와 향화(香花)를 갖추어 대관령으로 가서 그 신을 즐겁게 해준다고 한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도 강릉에서는 산길의 안전과 풍농 풍어(豊農豊漁)를 비는 강릉단오제가 거행되고 있는데, 이때 주신(主神)인 서낭신은 범일국사신(梵日國師神)이고, 산신은 김유신장군신이라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삼국통일의 중심적인 인물로서 수많은 일화와 전설을 곳곳에 남긴 신라 화랑 김유신은 78살인 서기 673년 8월 7일 눈을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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