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8월 15일 -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문학을 다시 살펴봅니다

튼씩이 2018. 8. 15. 18:32

어느 겨울바람 세게 불던 날


긴 모가지로 사방 살피며

문 잠그고 김광진과 달콤한 밤을 보낼 때

그때

 

일송정 선구자들

북간도 벌판에서

왜놈 순사 칼에 죽어 가던 날

그날

 

‘우리들이 내놓는 정다운 손길을 잡아라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에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는 한

너희는 평화스러우리 영원히 자유스러우리’

 

황군의 딸이 되어

천황의 승승장구를 빌어마지 않던 날

그날

 

인쇄소 윤전기는

‘그 처참하든 대포소리 이제 끝나고 공중엔

일장기의 비행기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는 아침

남양의 섬들아 만세를 불러 평화를 받어라’

찍어 내었지

바쁘게

 

원치 않던 비행이여!

지겨운 조선이여!

영혼 팔아 챙긴 이름 석자

NO천명

NO천명

 

<사쿠라 불나방>에 있는 이윤옥 시인의 시입니다. 대표적인 친일파 시인으로 알려진 노천명(1921~1957)은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 25일 시집 <창변>을 출간하고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습니다. 이 시집 뒷부분에는 친일시가 아홉 편 실려 있었는데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노천명은 이 시집에서 뒷부분의 친일시 부분만 뜯어내고 그대로 판매하고 맙니다. 전쟁말기 상황에서 미처 배포하지 못하고 쌓아놓고 있던 시집을 땅속에 묻거나 태워버릴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기는 아까웠던 모양입니다.

 

원광대 한국어문학부 김재용 교수는 “그동안 친일문학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것은 자료가 없고 시간이 너무 지났기 때문이 아니라 관심이 부족했던 까닭이다. 친일 진상규명 여부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인식의 문제다”라고 말합니다. 국어책에서조차 가르쳐주진 않은 그의 친일행각이 잘 나타난 친일시 한 편을 감상하지요. 이런 사람들과 더불어 광복의 기쁨을 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아라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

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 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

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리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랜만에

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

 

노천명,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