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8월 18일 - 왜장을 수장시킨 논개의 붉은 마음에 물듭니다

튼씩이 2018. 8. 18. 17:27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우리가 익히 아는 변영로의 ‘논개’ 일부입니다. 1593년 8월 18일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후처 논개(論介, ?~1593)가 임진왜란 때 남편이 전사한 뒤 왜군이 촉석루에서 벌이는 잔치에 참석해 장수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날입니다.

 

성은 주씨(朱氏)인데 전북 장수(長水) 임내면 주촌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전합니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유몽인(柳夢寅)이 쓴 <어우야담)에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전하기에 논개는 기생이었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논개와 관련하여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말은 논개 영정이 친일화가의 작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진주 의기사에 걸려 있었던 논개의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그린 작품인데, 이당은 일제강점기에 금차봉납도를 그린 친일행적으로 친일파로 지목된 화가입니다. 결국, 2007년 경남 진주시와 전북 장수군이 공동으로 벌인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충남대 회화과 윤여환 교수의 논개영정이 새로운 영정으로 인정되었고, 국가표준영정 7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영정은 논개가 나고 자란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을 중심으로 신안 주씨(新安 朱氏) 문중 여성 150여 명의 얼굴을 분석해 모델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또 ‘넓고 네모반듯한 이마에 초승달 같은 눈썹’을 표현하는 조선 시대 미용법을 따르고 복식(服飾)은 고전복식전문연구소에 의뢰해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영정이 되었습니다. 왜장을 물속에 수장시킨 논개의 영정이 적어도 친일화가의 작품이어서는 안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