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바칠 차(茶)가 이 고을(함양)에는 나지 않는데도 해마다 백성에게 차세(茶稅)가 부과되었다. 그래서 백성은 나라에 차세를 바치려고 전라도에서 쌀 한 말을 주고 차 한 홉을 얻었다. 내가 이 고을에 부임했을 때 이러한 폐단을 알고 백성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고 관가에서 사서 대신 올렸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며, 문신,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함양군수 시절 백성의 차세 고통을 보고 차를 관에서 대신 사서 올렸고, 관의 차밭을 만들기까지 합니다. 차밭을 만든 뒤 김종직은 시를 읊조립니다.
신령 차 받들어 임금님 장수코자 했는데
신라 때부터 전해지는 씨앗을 찾지 못하다
이제야 두륜산 아래에서 구하게 되었으니
우리 백성 조금은 편해져 기쁘네
김종직의 사상과 학문적 경향 그리고 행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의 백성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인정해야 할 일입니다. 또 아내의 영전에 바친 제문, 곧 ‘제망처숙인문(祭亡妻淑人文)에서 그의 인간성을 되짚어봅니다.
“삼가 제물을 갖추어 당신 영전에 고합니다. 우리가 백 년을 함께하기로 기약했는데 이제 겨우 서른 해. 그런데 당신은 영영 내 곁을 떠나려 합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단 말입니까?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날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어 한마디 말도 제대로 이를 수가 없습니다.”
1492년 8월 19일은 점필재 김종직이 세상을 하직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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