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8월 31일 - 억울한 사람은 신문고를 쳐라

튼씩이 2018. 8. 31. 09:47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있기 마련이지요. 오늘날에도 형식을 갖추어 법에 호소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억울한 사연을 고하는 일을 신문고가 맡았습니다.


 

<중종실록> 40권, 15년 8월 30일 내용을 볼까요? “ ‘전에는 행차를 가로막고 하소연하면 사람들이 듣고서 놀라워하였는데, 이제는 하찮은 일일지라도 예사로 생각하여 하소연하느라고 대가(大駕)를 가리고 따르므로 보기에 매우 민망하니 억울한 내용이 부실한 자는 죄주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수리(受理)하지 않으면 그만일 뿐이지 죄줄 수는 없다’ 하였다. 이에 집의(執義) 남세준(南世準)이 아뢰기를, ‘듣건대 하소연하는 자가 혹 고개를 넘고 재를 넘어 따라가는 자까지 있다 하니, 재상(宰相)의 행차일지라도 사람들이 피해야 하는데, 더구나 임금이 지나는 곳에서 어찌 그처럼 외치며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듣기에 매우 한심합니다. 신문고(申聞鼓)에서 하소연하도록 하고 가마를 가로막고 길에서 하소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그러나 신문고 제도도 담당하는 관리가 그 언로를 막으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억울한 사연이 올라가기 전에 차단되기 때문이지요.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신문고를 설치한 지 27년 만인 1428년 세종 때 일입니다. <국조보감> 6권을 보면 어떤 사람이 광화문의 종(鐘)을 쳤습니다.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문고를 관장하고 있는 자가 금지하였기 때문에 종을 친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임금이 이르기를 “신문고를 설치한 것은 아랫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이 올라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신고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면 죄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어찌 신문고를 맡고 있는 관리와 관계가 있겠는가. 이와 같이 억제해서 억울함을 신고하지 못하게 한 것이 필시 많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파직한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위에서 민심을 챙기고자 하여도 아래에서부터 전해지지 않으면 그 본래 의도는 퇴색되기 마련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입니다. 윗사람의 고민을 알아주지 못하는 관리가 임금은 야속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