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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평생토록 우리 문화재를 수집해 온 고 정조문(1918~89) 선생은 1925년 일본에 건너가 갖은 고생 끝에 사업에 성공한 분입니다. 선생은 1949년 골동품상이 밀집해 있는 교토 산조(三條) 남쪽 거리를 걷다가 어느 한 가게 진열장에 놓인 둥그런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반해 자그마치 1년 동안 돈을 모았고 마침내 달 항아리를 손에 쥐었는데 이후 선생이 가장 아끼는 문화재였습니다.
큰 항아리는 형태를 만들거나 구워내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물레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 두 부분을 붙여 완성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기에 이 달항아리는 붙인 부분의 이음선이 보이거나 조금 어긋나고 기울어서 좌우의 균형이 비대칭을 이루는 어쩌면 찌그러지고 부자연스럽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언듯 보면 뭔가 잘 못 만든 도자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달항아리는 그러한 특징에도 정조문 선생이 자기 자신의 뿌리 곧 조선의 위대한 정신의 소산이라고 생각했고,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부잣집 맏며느리를 보는 것처럼 넉넉함을 느낀다.”고 말했으며, 이동주 선생은 “조선 사대부의 지성과 서민의 질박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고 했습니다. 이 백자 달항아리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것은 제262호(용인대학교 소장), 제309호(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제310호(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보물 제1437호 등 보물만도 4건이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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