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예전에 볼일을 보던 뒷간(화장실)은 집 하고 좀 떨어진 곳에 두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냄새를 피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래서 한겨울 밤중에 똥오줌(대소변)을 누러 갈 때는 곤혹스러웠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뒷간에서 달걀귀신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숭숭 뚫린 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와 뒷간에 앉아있는 동안에는 몸이 오그라들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60~70년대만 해도 도시의 부잣집을 빼고는 모두 뒷간이 집 밖에 있었고 그것도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이 많았습니다. 대신 어린아이나 노인 또는 식구들이 한밤중에 뒷간을 가지 않아도 되게끔 오줌(소변)을 받아 내기 위한 이동용 변기 "요강"을 마련하여 집안에 두고 거기서 볼일을 보았지요. 그래서 예전에 요강은 신부 혼수품 1호였습니다. 특히 딸이 시집가는 날 가마 안의 요강에 목화 솜을 넣어 소변을 볼 때 부끄럽지 않도록 친정어머니는 신경을 썼지요.
요강은 다른 말로 야호(夜壺), 음기(飮氣), 설기(褻器), 수병, 요분(溺盆)이라고도 불렀으며 그 밖에 지방에 따라서는 오강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요강의 재료는 도자기ㆍ유기ㆍ목칠기와 놋쇠 따위로 다양한 편입니다. 한국결혼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1960~70년대 평균 혼수비용은 24만 7,000원이었다고 하는데, 이제 2000년대는 1,355만 원으로 54배나 늘었지요. 1940~50년대 신부 혼수는 바느질 용구, 각종 보자기, 자신이 입을 옷과 함께 수저ㆍ주전자 같은 주방용품류, 요강, 대야 따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혼수품은 다이아반지와 함께 PDP TV, 냉장고, 드럼세탁기, 노트북, 홈시어터 그리고 아파트 열쇠까지 등장했지요. 혼수품으로 신부를 평가하는 시대에 옛 여인들의 혼수품 1호 요강은 마치 동화 속의 이야기만 같습니다. 불과 30~40여 년 전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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