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나아가서 감기가 돌지 아니할 정도로 自殺劇(자살극) 一幕(일막)을 實演(실연)하여라. 이튿날에는 미인의 투신자살이라고 버젓하게 나지 안나. 朴家粉(박가분) 한 갑에도 10錢(전)하는 시절에 電車(전차)삭 5錢(전)이면 一躍(일약) 사회적 미인이 되지를 안는가! 또 斷髮(단장)을 하면 斷髮美人(단장미인) 洋裝(양장)을 하면 洋裝美人(양장미인) 도망질을 하면 도망질美人(미인)……"
이는 1930년 1월 1일 《별건곤》25호에 나오는 <미인되는 비결>의 한 토막입니다. 자살소동을 벌이거나 박가분을 사 바르는 것만으로 일약 사회적 미인이 된다는 말이 흥미 있군요. 이러한 사회적 미인 말고 진짜 미인이 되는 방법도 소개됩니다.
"一, 잘 자고 잘 먹고 잘 排便(배변, 三時로 냉수를 한 잔씩 먹는다)을 식힐 것 二, 아츰밥에는 야채를 먹을 것 三, 목욕을 자조 말 것 四, 하로에 한번 맛사-지를 할 것 五, 물로 눈을 잘 씨슬 것 六, 잘 때에 분을 시처버리고 잘 것 七, 니ㅅ발을 희게 할 것 八, 얼골 모습을 딸어 머리를 비슬 것 九, 거울 압헤 5분간 靜坐(정좌)할 것 十, 화장은 七八 分(7~8분)으로 엷히 할 것"인데 거울 앞에 5분간 앉아 있으라는 주문이 눈에 띄고 화장을 엷게 하라는 말도 재미납니다.
그나저나 두껍게 화장할 만한 화장품이 있기나 했을까요? 일제강점기에 미인이 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 판 박가분(朴家粉)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상표 등록하여 판매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공산품으로서는 맨 처음 만들어 판매한 화장품입니다. 박가분은 전성기에는 온 나라의 방물장수가 몰려들었고, 하루 1만 갑 이상 팔리기도 했다지요. 당시 박가분이 인기를 끈 이유는 바로 포장 방식이었다고 전합니다. 박가분 이전의 백분은 얇은 골패짝 같은 것으로 작게 만들어 백지로 싸서 팔았지요. 그러나 박가분은 훨씬 두꺼웠고, 인쇄한 라벨을 붙인 상자에 담아서 팔아 상품 가치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인기가 치솟으면 가짜가 등장하는 법인데다가 화장품 속에 든 납 성분이 몸에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아 이내 박가분은 시들해지고 맙니다. 결국 박가분은 1937년 이후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한편, 그 뒤로 화장품 광고에는 "절대 납이 들어 있지 않음"이라는 구절이 필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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