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10월 25일 - 조선후기 여류문인 강정일당을 소개합니다

튼씩이 2018. 10. 25. 09:26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사람 노릇을 할 수 없고, 의리를 버리고 돈벌이만 하는 것은 가난을 참고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오니, 바느질과 길쌈은 대강 할 줄 아는 제가 하루 세끼는 잡수시게 할 것이온즉슨,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성현의 글을 읽으시고 살림엔 괘념치 마옵소서"



이는 조선 후기 여류시인이자 성리학자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이 남편을 독려하여 학자의 반열에 오르게 한 심지 곧은 마음을 나타내는 글입니다.


강정일당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이 더욱 어려워져 남편이 생계 마련에 분주하자 이를 만류, 다시 학문의 길로 들게 했으며 독학하던 남편을 타일러 당대의 학자 송치규(宋穉圭)의 사문(師門)에 들어가게 했지요. 그리고 남편의 학문적 자세를 가다듬는 편지를 나누었는데 ‘선비로서 좋은 스승과 좋은 친구 사귀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 달라’는 글들로 남편을 격려하고 뒷받침해주었습니다.


좋은 세월 하는 일 없이 보내

내일이면 내 나이 쉰하나

밤중에 슬퍼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남은 삶 오직 내 한 몸 닦을 뿐


- '섣달그믐 밤에' -


시 속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것은 슬하에 둔 5남 4녀가 모두 1년을 못 넘기고 죽은 것을 지켜봐야 했던 어미의 마음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훗날 강정일당은 "우리나라에 신사임당과 임윤지당, 두 부인의 덕행 있었는데 사임당(師任堂)은 시를 잘하고, 윤지당(允摯堂)은 문장을 잘해 이름난 분들이다. 정일당(靜一堂)은 시만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사서(四書) 읽기를 좋아해서 많은 기록을 남겨놓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사후에 《정일당유고집》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성남문화원은 해마다 10월이면 어진 인품과 부덕을 갖추고 지역사회 발전과 향토문화 창달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에게 강정일당상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