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은 인삼의 날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 2권을 보면 "내가 일찍이 《삼국지》, 《남사(南史)》, 《북사(北史)》를 보니, 우리나라의 초피(貂皮, 노랑담비 가죽)와 인삼(人蔘)은 나라의 귀중한 보배라 했는데, 지금 토호와 관리가 그 이익을 독차지하여 강하면 토하고 부드러우면 삼켜서 그 해가 끝내는 백성에게 돌아오게 되는 바, 임형시라는 관청을 어찌 설치하지 않겠는가?"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중국인들의 인삼 선호는 삼국지 시대로 거슬러 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 편에 보내는 나라의 선물로는 단연 인삼이 으뜸이었습니다.
《세종실록》 16권(1422)에 보면 중국으로 가는 사신을 보내며 함께 보낸 예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동안 성궁(聖躬)이 만복(萬福)하신 줄 믿고 삼가 예물(禮物)을 갖추어 배신(陪臣) 판중군도총제부사 한장수를 보내어 행재소(行在所)에 나아가 문안드리고, 예물 목록을 적어서 함께 주문(奏聞)하나이다. 황세저포(黃細苧布) 20필, 백세저포(白細苧布) 30필, 흑세마포(黑細麻布) 50필, 인삼(人蔘) 100근, 잡색마(雜色馬) 열 필입니다." 중국에 인삼을 많게는 100근, 적을 때는 30근 정도 예물로 보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인삼을 보낸 이야기가 무려 1,065건이나 나옵니다. 매번 보내는 양이 다르지만 대략 한 번에 평균 50근만 잡아도 5만 근이 넘을 만큼 인삼이 중국으로 또는 일본으로 갔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이렇게 선물로 가는 것 외에 인삼밀매도 성행합니다.
《숙종실록》 50권 1711년에는 중국 사신으로 다녀온 정식(鄭栻)이 임금께 인삼 밀매 현장을 아뢰는 기록이 보입니다. "중국인들이 연강(沿江) 근처에다 막사(幕舍)를 짓고 우리 백성과 서로 가깝게 지내면서 왕래(往來)가 무상(無常)하며, 혹 인삼(人蔘)과 수피(獸皮, 짐승가죽)를 많이 가지고 몰래 소금과 양곡(粮穀)으로 바꾸는 까닭에, 무식한 변경(邊境)의 백성이 이익(利益)을 탐내어 죽음을 잊습니다." 이를 견리망사(見利忘死)라고 하는데 이익을 추구하다 목숨을 잃는다는 뜻이지요. 인삼이 인기 품목인지라 어떻게든지 빼돌려 이익을 취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사신들의 예물꾸러미와 밀매꾼들의 이익을 위해 조선의 인삼은 쉴 새 없이 북경을 넘나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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