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238. 손녀딸 시집보낼 때 무명이불 보낸 청백리 장응일

튼씩이 2016. 3. 7. 10:17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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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3.. 7



조선 중기 문신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1599∼1676)은 대사간과 가선대부(조선시대 종이품의 문관과 무관에게 주던 품계)를 지낸 인물로 청백리입니다. 그는 사사(賜死)하라고 명이 내려진 민회빈(愍懷嬪) 강씨(姜氏)의 구명상소를 아흐레 동안이나 계속하여 올렸고, 사헌부 장령으로 있을 때는 권세를 휘두르던 김자점(金自點)의 탐욕, 방자함을 탄핵할 정도로 강직한 선비였습니다.

장응일은 깊은 두메 영동 황간 땅에 유배되었을 때 겪은 백성의 불쌍한 삶을 보고 임금에게 말합니다. “농사꾼 아낙들은 죽도록 일만 하다가 열이면 셋이 등이 구부러져 영영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죽습니다. 또 백성의 자식은 나이 열 살이 되도록 아랫도리를 감출 베 한 조각이 없어 오줌대롱을 내놓은 벌거숭이로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양반들은 날로 사치하는 풍조가 늘어 비단옷 입는 아낙이 많습니다. 국법으로 백성들이 비단옷 입는 것을 엄히 다스리옵소서.”

그렇게 임금께 진언한 그는 대사간이 된 뒤에도 무명이불 덮기를 고집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손녀딸을 시집보낼 때 부인이 명주이불 한 채 해서 보내자고 간청했지만 그의 대답은 한 마디로 “안 되오”였지요. 그를 안 그의 벗이 “그대는 지나치네. 일부러 청렴하다는 이름을 들으려고 손녀딸 시집보내는데 무명이불을 보낸 것 아닌가?”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자 장응일은 “교만하고 편안하고 사치하며 지내는 버릇이 굳어지면 나중에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찌하겠는가? 나는 그래서 후손들에게 사치를 가르치지 않는다네.”라고 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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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박이말 시조 253>

기리며빎



온두살 늙으신분 꽃묶음 품에안고

먼갈쪽 우러러 옷깃여며 고이빈다

다늙어 귀먹어서도 들리는 그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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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두살 백두살
* 갈쪽 서쪽

나이 백두 살이신 어르신, 꽃다발 품에 안고 먼 조국을 향해 우러러 옷깃을 여민다. 다 늙고 귀먹었지만 지금도 들리는 그 소리 "조선 독립만세!"
올해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 겨레의 얼넋이자 영원한 금자탑이며, 마음의 횃불인 ‘3ㆍ1 독립운동’ 97돌이 되는 해다. 이 해와 이날은 죽어도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다. 나이 90이 되고 100살이 넘어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먹어도 그때의 우리 한겨레의 늠름한 모습과 "만세!", "조선 독립만세!" 하고 외치면서 싸운 우리 조상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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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본 한국문인협회 회장 김리박

소장 김영조 ☎ (02) 733-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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