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240. 사인검, 호랑이의 위력으로 왕실의 안녕을 꾀하다

튼씩이 2016. 3. 9. 10:23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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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3. 9.



조선시대에 임금의 지시에 의해 국가사업으로 만들었던 칼 사인검(四寅劍)이 있습니다. 이 사인검은 12간지의 인(寅)이 4번 겹치는 때 곧 호랑이해인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를 택해 12년 마다 벼리었습니다. 그것은 호랑이의 위력을 빌려 사악한 귀신을 물리침으로써 왕실과 궁중의 안전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사인검은 칼 몸 한 면에 <사인검>을 포함한 27자의 한자가 금(金)상감 되어 있고, 다른 한 면에는 191개 별자리가 역시 금상감 되어있는 보검입니다.

사인검 말고도 인(寅)이 세번 겹치는 때 만든 삼인검, 두번 겹치는 때 만든 이인검도 있는데 이를 모두 “인검”이라고 합니다. 이 “인검”은 중국이나 일본 어디에도 없는 우리 겨레 고유의 칼이지요. 사인검이 임금이 전장에 나가는 장수에게 하사하기 위하여 만든 칼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임금이 내려준 칼 가운데 사인검이 있을 수 있지만 일부러 출정하는 장수를 위해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사인검(四寅劍)은 전례에 따라서 만든다고는 하나, 다만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좌도(左道, 유학에 어긋나는 사교)에 관계되니, 참으로 쓸 데 없는 물건입니다. 이 같은 흉년을 당하여 장인을 많이 모아 여러 달 동안 다듬어 만들므로 참으로 낭비가 많으니, 무익한 것을 만들어 유익한 것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에 매우 어그러집니다.” 위는 《중종실록》 37년(1542) 4월 27일 기록입니다. 이렇게 사인검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재정이 들어가고 많은 사람이 몇 달 동안 일을 해야 하기에 흉년 같이 어려운 때에는 반대하는 신하가 있으면 벼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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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야기 340 >

아오모리에 핀 봄까치꽃(큰개불알꽃)



데일리도호쿠신문 3월 8일치에는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八互市)의 봄소식을 알리는 사진 기사가 1면을 장식하고 있다. ‘봄소식, 가련한 큰개불알꽃’이란 제목에 어린 두 꼬마가 봄꽃 핀 언덕에 앉아 있는 사진이 귀엽다. 봄꽃 핀 동산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자세히 보지 않고는 봄꽃인지 잔디밭인지 구분이 안 갈만큼 ‘큰개불알꽃’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아오모리현은 일본의 북쪽 지방이지만 이곳에도 슬슬 봄기운이 돌아 어제 낮 기온은 13도나 올랐다고 한다. 봄꽃들이 바야흐로 기지개를 피는 계절이다. “마부치 언덕에는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큰개불알꽃이 푸른 꽃을 피워 봄소식을 알렸다. 오후 무렵 근처에 놀던 어린이가 여린 꽃을 쥐고는 ‘저녁에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한다면서 신문은 짧게 ‘큰개불알꽃’이 피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글쓴이는 지난 1월 나라(奈良) 반야사(般若寺)에서 이 큰개불알꽃을 보았다. 이 꽃은 아주 작아서 몸을 땅에 납작 수그리지 않으면 도저히 눈에 띄지 않는 꽃이다. 왜 하필 개불알꽃이런가! 아무리 보아도 꽃 자체는 개불알을 연상하기 어렵다. 다만 이 꽃의 열매가 개의 불알을 닮았다고 해서 일본식물학자 마키노도미타로가 붙인 이름이다.

풀꽃이름을 지을 때 꽃을 보고 지을 것인지 열매나 뿌리를 보고 이름을 지을 것인지는 이름 짓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으로 본다. 일본말 오오이누(큰개), 후구리(불알)에서 유래한 큰개불알꽃은 지금 한국 표준말이다.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일제강점기의 영향이다.

제국주의 식물학자들은 한반도를 손아귀에 넣은 뒤 대거 조선땅으로 건너와 한반도 식물조사에 착수했다. 물론 한국 식물학의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식민 경영상 필요한 자원수탈의 차원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수많은 풀꽃들이 일본인 식물학자 이름으로 학명에 올랐고 큰개불알꽃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봄까치꽃, 또는 봄까지꽃이라 함), 개불알꽃(복주머니난, 또는 요강꽃) 같은 것은 일본말을 그대로 번역해서 쓰고 있는 실정이다.

요새는 슬기전화(스마트폰)마다 성능 좋은 사진기가 붙어 있어 너도 나도 사진가 행세를 한다. 봄을 맞이하여 카톡방에서는 들꽃들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물론 개불알꽃들도 그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아름다운 마음이지만 자신의 말글로 붙인 이름이 아닌 일본말을 그대로 옮긴 풀꽃 이름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의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인물과사상사》 은 그런 우리 풀꽃이름의 속사정을 쓴 책이다.

*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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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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