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도’ 중 소과응시 부분, 저들 중엔 응시자보다 거벽, 사수, 선접꾼이 더 많다
조선시대에는 벼슬아치들을 과거로 뽑았음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그 과거가 부정으로 얼룩졌음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먼저 과거장에 들어갈 때 예상 답안지와 참고서적을 담은 책가방, 곧 책행담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이는 커닝의 고전적인 방법이지요. 그래서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보면 과거장이 마치 책가게 같았다고 합니다. 또 과거장에 들어가는 사람 가운데 실제 답안지를 내는 사람은 턱없이 적습니다.
예를 들면 정조 24년에 치른 과거는 10만 명 정도가 들어가 답안지는 3만 명만 냈다고 하지요.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응시생인 양반집 자제들은 과거장에 조수 여러 명을 데리고 들어가는데 글을 짓는 ‘거벽’, 글씨를 써주는 ‘사수’가 따라 들어갑니다. 과거를 보는 사람은 손도 까닥 안 하고 대리시험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좋은 자리를 먼저 잡고 답안지를 다 쓰면 폭력을 써가면서까지 답안지를 대신 내주는 ‘선접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먼저 내려고 폭력까지 쓰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수만 장의 답안지를 며칠 안에 다 보기 어려우니 실제로는 답안지 앞부분만 보거나 앞에 낸 수백 장만 채점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를 통해 훌륭한 인재를 뽑는다는 본래 취지가 퇴색되어, 일부이기는 했지만 소수 힘 있는 가문의 벼슬 독점장이 되었던 과거시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씁쓸합니다. 이제 대학 수능시험 철입니다. 예나 이제나 시험이 없는, 아니 부정시험이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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