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에 봄빛이 싱그러운데
하늘가의 나그네 아직도 떠나지를 못하였네
풀잎은 천리를 이어 푸르고
달은 두 곳에 함께 밝을 터
돌아다니느라 돈은 다 썼고
돌아갈 일 생각하느라 머리만 세어가네
사나이가 사방에 뜻을 두는 것은
공명을 위함만은 아니라네
위 시는 정몽주(鄭夢周, 1337~1392)가 왜구(倭寇)의 잦은 침범을 따지려고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지은 시입니다. 정몽주는 고려 충숙왕 때 태어나 예조정랑 겸 성균관박사, 대사성, 봉익대부, 예의판서, 예문관 대제학을 두루 거쳤습니다. 이러한 관직을 거치면서 그는 오부학당(五部學堂)을 열어 후진을 가르치는 한편, 유학을 크게 진흥해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지요. 역성혁명으로 조선왕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고려왕조에 충절을 바친 그는 60살 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에 의해 선죽교에서 살해되었습니다. 호는 포은(圃隱)으로 고려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고 문집으로 '포은집'이 있지요.
그는 인품이 고매하고 뛰어나며 충효의 본보기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조예가 깊었습니다. 시문은 호방, 준결하며, 시조 ‘단심가(丹心歌)’는 그의 충절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후세 사람들이 읊곤 하지요. 만고의 충신 정몽주 선생은 열아홉에 아버지 시묘살이를 했고, 스물아홉에는 사직을 뒤로 한 채 낙향하여 어머니 시묘살이를 마칠 만큼 효성도 지극했습니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극진한 효자였던 포은 정몽주 선생의 생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지난 게시판 > 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24일 - 슬기로운 속풀이 음식을 알아볼까요 (0) | 2018.11.24 |
---|---|
11월 23일 -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지요 (0) | 2018.11.23 |
11월 21일 - 백전을 하면 시 두루마리가 산더미처럼 쌓이지요 (0) | 2018.11.21 |
11월 20일 - 과거장이 책가게가 되었습니다 (0) | 2018.11.21 |
11월 19일 - 밤으로 만든 한과, 율란을 먹어보세요 (0) | 2018.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