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왈칵 치밀었다. 생전에 고운 옷 한 벌 입지 않으시던 어머님, 설날 아침이 되면 겨우 하얀 외씨버선을 신고 절을 받으시며 세뱃돈을 나누어 주시던 어머님께 꽃버선을 사드리고 싶어서였다.”
서상옥의 수필 <꽃버선과 할머니의 눈물> 가운데 나오는 말입니다. 버선은 무명·광목 등으로 만들어 발에 꿰어 신는 것으로 한복을 입으려면 꼭 필요하지요.
연중 동짓달과 섣달 추위는 매섭기 짝이 없어 지금처럼 훈훈한 아파트나 두툼한 점퍼에 포근한 양말이 없던 시절에는 겨울나기가 수월치 않았습니다. 이런 때에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는 풍속이 있었는데 ‘동지에 만들어 바치는 버선’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엔 동지부터 섣달그믐까지 시어머니와 시가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드리려고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지는데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多産)을 빈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습니다. 18세기 실학자 이익은 동지헌말에 대해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비손하는 뜻이라 했습니다.
며느리가 도톰한 솜을 넣어 정성껏 만들어준 버선을 신은 시어머니는 세상에 더없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풍습이 대대로 이어져온 까닭은 단지 발을 따뜻하게 하려는 것이라기보다 늙고 병들어 가는 시어머니의 주름과 그가 살아온 고난의 한평생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버선 신을 사람도 없지만 동지헌말 정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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