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매(一枝梅)는 도둑 가운데 협객이다. 그는 탐관오리들의 뇌물을 훔쳐, 먹고살 길 막막한 사람이거나 죽어 장사지낼 돈조차 없는 백성에게 훔친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 처마와 처마 사이를 나는 듯이 다니고 벽을 붙어다니니 날래기가 귀신같아서 도둑맞은 집에서는 어떤 도둑인지 몰랐다. 그리하여 스스로 붉은색으로 매화 한 가지를 그려 놓았다. 다른 사람이 의심받지 않게 해서였다. 매화 한 가지 증표로 남겨두고 탐관오리 재산으로 가난한 이를 돕는다. 때 만나지 못한 영웅 예부터 있었으니 옛적에도 오강에 비단 돛 떠올랐었다.”
위 글은 조선 후기의 위항시인(중인 이하 계급 출신 시인)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쓴 ≪추재기이(秋齊紀異)≫ 일부입니다. 백성에게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던 일지매, 그는 탐관오리 집에서 도둑질을 하고는 늘 매화 한 가지를 그려놓았다고 하지요. 그런 매화는 일지매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선비들이 무척이나 좋아하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도 매화를 사랑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조가 죽은 뒤 김홍도는 생계가 무척 어려워졌는데, 이런 와중에 그는 어떤 이가 팔려고 내놓은 매화 화분에 그만 마음을 뺏겨 버렸습니다. 마침 그림 값으로 들어온 3,000냥이 있어 2,000냥으로 매화를 사고, 혼자 보기 아까워 친구를 모아 800냥으로 술자리까지 벌였다고 하지요. 어쩌면 그 매화일지도 모르는 김홍도의 그림 “백매(白梅)”가 간송미술관에 있습니다. 이 그림은 마음이 통하는 벗과 함께 술잔을 나누며 바라보고 싶은 소탈하고 정취 어린 그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