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260. 우리나라 고서화가 잘 썩지 않는 까닭은?

튼씩이 2016. 4. 6. 11:03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다른 얼레빗 모두 보기

단기 4349(2016). 4. 6.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도구로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먹은 언제부터 썼을까요? 우리나라 먹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물을 보면 일본의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먹 2점입니다. 배 모양으로 된 이 먹은 먹 위에 “신라양가상묵(新羅楊家上墨)”, “신라무가상묵(新羅武家上墨)”이란 글씨가 찍혀 있어서 이 먹이 신라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남 창령군 의창 다호리 목관묘에서 출토된 붓은 붓이 출토된 고분이 기원전 1세기를 앞뒤로 한 원삼국시대 것임에 비추어 일찍부터 우리나라에 먹을 썼음을 미루어 알 수 있지요.

또한 중국 명나라 도종의(陶宗儀)가 쓴 《철경록(輟耕錄)》에 고구려에서 송연묵을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담징이 제묵법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이미 좋은 먹을 만들고 먹의 쓰임이 많았음을 알려줍니다. 조선시대에는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만든 먹이 그 질이 뛰어나게 우수하여 나라에 진상하고,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였으며, 평안도의 양덕(楊德)에서 만든 송연먹은 향기가 좋기로 이름이 높았다고 전해지지요.

먹은 송진을 태워서 만드는 ‘송연묵(松煙墨)’과 기름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드는 ‘유연묵(油煙墨)’으로 나뉘는데, 송연묵은 주로 목판이나 목활자 인쇄에 쓰고, 유연묵은 금속 활자 인쇄에 썼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먹의 물리적 특성을 들면, 빛깔이 검은 것은 물론 오래될수록 빛깔이 바라지 않고 더욱더 깊은 맛이 난다는 것과 썩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고서화가 잘 썩지 않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
< 일본이야기 344 >

사쿠라꽃잎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일본



완연한 봄기운이 도는 요즈음 서울 여의도는 벚꽃잔치(놀이)를 한다고 법석이다.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윤중로 주변은 흐드러진 벚꽃을 배경삼아 사진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의도뿐만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벚꽃잔치가 한창이다. 마치 일본 같다.

벚꽃잔치라고 하면 일본의 하나미(花見)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나라꽃인 벚꽃을 일본말로는 사쿠라라고 하는데 이상한 것은 벚꽃잔치를 ‘사쿠라마츠리’라 하지 않고 ‘하나미’라고 부르는 점이다. 하나미(花見)를 직역하면 ‘꽃을 본다’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달맞이도 ‘츠키미(月見)’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달을 본다’라는 뜻이다. ‘꽃놀이’, ‘달맞이’와 같은 우리말과 견주면 좀 맹숭맹숭한 느낌이지만 어쨌거나 벚꽃잔치는 원래 우리의 오랜 습관은 아니다.

일본인들의 꽃놀이 풍습은 나라시대(710-794)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귀족들의 꽃놀이 행사였는데 당시에는 주로 매화꽃놀이였다. 그러던 것이 헤이안시대(794-1192)로 들어서면 서서히 벚꽃으로 바뀐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최고가집(最古歌集)인 《만엽집(万葉集)》에 벚꽃을 읊은 노래가 40수 (매화는 100수)나오다가 헤이안시대의 작품인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서는 이 숫자가 역전된다.

따라서 하나미(花見)라고 하면 헤이안시대부터 벚꽃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벚꽃잔치는 1천여 년도 더 된 오래된 풍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벚꽃잔치 ‘하나미’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행사로 봄이면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로 가족이나 직장동료, 연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들어 꽃반사람반의 물결을 이룬다.

이때 먹는 것이 ‘하나미 벤토(도시락)’이다. 물론 집에서 정성껏 우리네 김밥 싸듯이 색색깔의 ‘하나미 벤토’를 싸는 주부들도 있지만 편의점 등에서 간단히 사먹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요리는 눈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편의점에서 파는 것이든 집에서 만드는 것이든 하나미 벤토는 그냥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벚꽃처럼 화려하다. 맛있는 벤토를 싸들고 하나미를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본의 매스컴은 하나미 명소를 소개하느라 정신이 없다. 요즈음 일본은 흩날리는 사쿠라꽃잎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썼습니다.

.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59yoon@hanmail.net)

소장 김영조 ☎ (02) 733-5027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5가길3-1. 영진빌딩 703호
koya.egreennews.com, pine996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