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03 – 사북

튼씩이 2019. 7. 25. 08:10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가위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지렛대가 작용하려면 받침점, 힘점, 작용점의 세 가지가 필요한데, 그것은 가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가위에서 받침점 노릇을 하는 것이 사북이다. 가위의 두 짝이 'X' 모양으로 교차되는 부분에 박혀서 가위가 제구실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다음으로 힘점이 되는 가위의 손잡이를 일러 가위다리라고 한다. 가위질을 할 때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은 가위의 손이나 팔이 아니라 다리인 것이다. 가위다리는 길쭉한 두 개의 물건을 어긋나게 맞추어 'X' 모양으로 만든 형상을 뜻하기도 하는데, 북한에서는 한쪽 다리의 정강이 위에 다른 쪽 다리를 어긋나게 걸쳐 얹고 앉은 모양을 가위다리라고 한다. ‘가위다리를 친다’는 말도 남북한이 서로 다른 뜻으로 쓰고 있다. 남쪽에서는 긴 물건을 'X' 모양으로 서로 어긋매껴 놓는다, 북쪽에서는 부정이나 반대, 또는 틀렸다는 뜻으로 그 대상에 'X'를 표시한다는 뜻이다.


시험지 채점을 할 때 틀린 문제에 표시하는 'X'를 가리켜 우리는 흔히 가께표, 또는 꼬표라고 하는데, 가께표나 꼬표는 속어로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말들이다. 꼬표라는 말은 아마도 곱하기표라는 뜻의 곱표가 변한 말이 아닐까 싶다. 'X'를 가리키는 표준말은 가위표나 가새표인데, 가새는 가위의 사투리다.


받침점과 힘점에 이어 이번에는 작용점 차례인데, 가위의 작용이란 무엇을 베거나 자르는 일이므로 작용점은 가윗날이라고 할 수 있다. 칼날의 반대쪽이 칼등인 것처럼 가윗날의 반대쪽은 가윗등이다. 가윗밥은 가위질 할 때 생기는 헝겊 쪼가리를 말하고, 가윗집은 칼집과 마찬가지로 종이나 천, 요리 재료 같은 것을 가위로 베어서 낸 진집을 가리킨다. 진집이란 물건의 가느다랗게 벌어진 틈을 뜻하는 말이다.



사북 (명) ①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의 아랫머리나 가위다리의 교차된 곳에 박아 돌쩌귀처럼 쓰이는 물건


              ②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쓰임의 예 – 도청장 최봉일과 섬 안에 널려 있는 잡초들 같은 천한 것들 사이에서 자기는 사북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승원의 소설 『해일』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가윗밥 – 가위질할 때 생기는 헝겊 쪼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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