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서서히 음(陰)의 기운이 커진다는 24절기의 16째 ‘추분(秋分)’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추분을 그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옛 기록을 보면 한결같이 제사를 지낼 만큼 신성시 했던 날이지요. 특히 춘분과 추분 뒤에는 춘사일(春社日), 추사일(秋社日)이라고 해서 농사 시작 때는 농사가 잘되라는 마음으로 가을걷이 때는 오곡의 거둠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정종실록》 1년(1399) 3월 1일 기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중추원 부사 구성우의 처 유 씨는 계집종 영생을 죽이는 등 악행을 저질러 사헌부에서 유 씨를 죽이기를 청하였다. 이에 임금이 ‘범한 죄가 크기는 하지만, 봄ㆍ여름은 만물이 생장하는 때라, 옛 법에도 죽이는 것을 꺼렸으니, 추분(秋分) 뒤를 기다려서 단죄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했다.” 추분 때를 신성시했다는 얘기입니다.
추분은 해가 북에서 남으로 적도를 통과하는 때여서 낮밤의 길이가 같아지는데 이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중용(中庸)을 뜻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중용을 지키기가 쉽지 않지만 중용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자세지요. 또 추분 즈음에는 익은 벼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한자 향기 ‘香(향)’ 자를 보면 벼 화(禾) 자에 해 일(日) 자가 붙었는데 벼는 뜨거운 해를 품고 속이 익은 것이지요. 그것처럼 사람도 뜨거운 정진으로 내면의 세계를 완성하면 그 사람에게선 아름다운 향이 배어나올 것입니다. 24절기를 통해 세상 살아가는 이치와 마음씀씀이도 생각해보면 좋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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