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236호) 서양엔 구세주신앙, 우리나라엔 미륵신앙

튼씩이 2019. 12. 24. 08:27
“선종(善宗)이 미륵불(彌勒佛)을 자칭하며 머리에 금색 모자를 쓰고 몸에 방포를 입었으며, 큰아들을 청광보살(靑光菩薩), 막내아들을 신광보살(神光菩薩)이라 했다. 바깥나들이 할 때는 항상 백마를 타고 채색 비단으로 말갈기를 장식하고, 동남동녀(童男童女)로 일산과 향화(香花)를 받들게 해 앞에서 인도했으며, 승려 200여 명으로 범패(梵唄)를 부르면서 뒤를 따르게 했다." 이는 《삼국사기》 권 50, 궁예 편에 나오는 기록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후고구려(뒤에 태봉)를 세운 궁예는 늘 자신을 미륵불(彌勒佛)이라고 했다고 하지요.

 

고려말, 조선초에 향나무를 바닷가 개펄에 묻어두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때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침탈에 고통을 받던 백성들이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이 오시기를 간절히 비는 뜻을 담았습니다. 이 미륵신앙은 시골길을 걷다가 문득 풀숲 사이로 나타나는 미륵상이나 절에 모셔진 미륵보살상으로 나타나는데 근세 우리나라에서 생긴 증산교, 용화교 등도 미륵신앙이지요.

 

어느 시대건 지배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 억압받는 사람들은 누군가 구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억압받는 민중의 바람이 신앙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미륵신앙(彌勒信仰)입니다. 미륵신앙은 서양 기독교의 구세주 신앙과 비슷하지요. “님이 오셨다, 사랑이 오신 게다 / 내 속으로 미륵이 쳐들어오신 게다 / 내장 다 빼내 던져버리고 / 들어와 앉아 계신 / 불덩어리 둥근 달이여, / 그토록 기다리던 미륵 아닌가” (김종제 시인의 “미륵 오셨다”에서) 오늘은 성탄전야, 우리나라엔 전통적으로 ‘미륵신앙’이 있었음도 생각하게 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