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237호) 48년 전 대연각호텔 큰불과 조선시대 멸화군

튼씩이 2019. 12. 25. 19:18

48년 전인 1971년 오늘(12월 25일)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던 대연각호텔에서 큰불이 일어났습니다. 화재진압을 위해 거의 모든 소방차가 출동했고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되었는가 하면 주한미군의 소방차와 헬리콥터까지 투입되었지만, 불로 죽은 사람만 163명이었고 다친 사람은 63명이나 되었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사건이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 화재로 기록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74년 11월 3일에도 서울 청량리 대왕코너에서 불이 나 88명이 숨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세종 때도 한성에 큰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31권, 8년(1426년) 2월 15일 기록에 보면 “한성부에 큰불이 나 행랑 1백 6간과 중부 인가 1천 6백 30호와 남부 3백 50호와 동부 1백 90호가 불에 탔고, 남자 9명, 여자가 23명이 죽었는데, 타죽어 재로 화해버린 사람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당시에는 한성의 집들이 목조건물이거나 초가였고, 심지어 집집이 처마가 붙어 있을 정도여서 그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창덕궁 대조전 앞의 ‘드므’, 화마가 왔다가 ‘드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창덕궁 대조전 앞의 ‘드므’, 화마가 왔다가 ‘드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결국, 세종은 소방서격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게 했습니다. 이 금화도감은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이 되었다가 1481년(성종 12)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로 고쳤습니다.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에는 멸화군(滅火軍)이란 상설소방대원이 있었는데 불을 없애는 군사라는 말이 재미납니다. 정원은 50명이었고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불이 나면 즉시 출동해서 불을 끄는 소방관입니다. 조선에서 불을 지르는 방화(放火)는 대부분 사형으로 다스렸고, 자기 집을 태운 사람은 볼기 40대, 남의 집을 태운 사람은 볼기를 50대 맞았으며, 불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는 매 100대를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