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234호) 마의태자 전설의 “충주 미륵대원터”

튼씩이 2019. 12. 20. 08:11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가면 사적 제317호 “충주 미륵대원(彌勒大院)터”가 있습니다. 해발 378m의 비교적 높은 곳에 있는 미륵대원터에는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 형식의 불전이 있지요. 석굴 가운데에는 대좌를 두어 석불입상을 봉안하고, 옆과 뒤 석벽의 가운데는 감실(龕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이 돋을새김 되어 있으며, 석굴 윗부분은 목조건물로 지어 천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절터에는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등, 귀부(龜趺),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의 석조 문화재가 있습니다.

 



사적 제317호 “충주 미륵대원(彌勒大院)터” 전경(문화재청 제공)


▲ 사적 제317호 “충주 미륵대원(彌勒大院)터” 전경(문화재청 제공)

 



전설에 따르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을 슬퍼해 금강산으로 갔는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돌에 마애불을 만들었고, 태자는 이곳에서 석굴을 지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절터인데, 석굴사원으로서 방식은 다르지만 석굴암을 모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지요.

 

1977년 1차 발굴조사 당시, ‘明昌三年金堂改蓋瓦(명창삼년김당개개와)’, ‘彌勒堂(미륵당)’, ‘彌勒堂寺(미륵당사)’ 등의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미륵을 모시는 절이며, 1192년(고려 명종 22) 금당의 기와를 새로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7월 28일자로 ‘중원 미륵리사지’에서 ‘충주 미륵대원지’로 사적 이름이 바뀌었지요. 이 미륵대원은 토함산 석굴암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유일한 석조ㆍ목조 구조의 석굴사원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