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자며, 과학자였던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어린 시절 묻습니다. "성리학에 나와는 있지만 농사짓는 법이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어른은 대답합니다. "그런 것은 잡학으로, 농부들이나 경험하여 아는 것이다." 그러자 홍대용은 다시 묻습니다. "잡학은 버려야 하나요? 잡학이야말로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이렇게 홍대용은 어려서부터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 가운데 가장 독특한 인물이었습니다.
또 그는 중국과 조선 또는 서양까지를 상대화하여 어느 한쪽이 세계 문명의 중심(화-華 )이고, 어느 쪽이 오랑캐(이-夷)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중국 중심적인 ‘화이론(華夷論)’을 부정해 자주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과 자연은 어느 쪽도 더 우월할 수가 없다는 주장을 펼쳐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똑같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의 신분적 차별에 반대하고, 교육의 기회는 균등히 하여야 함은 물론, 재능과 학식에 따라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해 당시 지식인 가운데서 가장 진보적인 주장을 한 사람입니다.
홍대용은 서양 과학이 정밀한 수학과 정교한 관측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아내곤 《주해수용(籌解需用)》이라는 수학서를 썼으며, 여러 가지 천문관측기구를 만들어 농수각(籠水閣)이라는 관측소에 보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담헌(湛軒) 홍대용은 또 “우주의 뭇 별들은 각각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끝없는 세계가 공중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지구만이 중심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하며 서양의 “지동설”을 받아들여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한 당시로써는 참으로 파격적인 과학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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