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은 암흑 속에 사라지는가. 이제 어디에서 우리의 얼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가증하다.”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이 견딜 수 없는 모욕감 속에서 한 말입니다. 선생은 중국 만주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 부인 성씨(成氏)가 1913년 9월에 첫딸을 출산한 뒤 엿새 만에 산고로 세상을 떴다는 비보를 듣고 급히 귀국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검은색 한복과 모자, 검은색 안경과 고무신 차림으로 다녔지요. 이것은 부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과 함께 나라 잃은 슬픔을 상복으로 나타내어 독립에 대한 염원이 변치 않았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127년 전인 1893년 오늘(5월 6일)은 정인보 선생이 태어난 날입니다. 선생은 젊은 시절 중국 땅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귀국 뒤에는 글을 써서 일제와 싸웠는데 특히 일제가 날조한 역사 대신 우리의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얼’을 강조하는 ‘얼사상’을 주창했습니다.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역사 연구에 몰두하며, “말 한마디, 일 하나, 행동 하나, 움직임 하나까지 깡그리 고갱이가 ‘얼’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던 선생은, 국학(國學) 보급과 민족문화를 북돋우는 일에 일생을 바쳤지요.
정인보 선생은 1945년 마침내 광복을 맞게 되자 일제하의 식민정책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면면하게 이어온 국학을 부흥, 발전시키기 위한 국학대학을 설립했습니다. 일제로 인해 단절된 우리 얼을 널리 떨치는 일이 무엇보다 급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선생은 역사 연구와 집필 생활에 몰두하다 6·25전쟁 북한으로 납치돼 그해 11월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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