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361호) 골진 이남박 주름은 어머니 시름

튼씩이 2020. 6. 15. 12:58

쪽 찐 머리에 똬리 얹어 / 함지박 이고 어머니 우물가는 길 /

누렁이 꼬리 흔들며 따라나서고 / 푸른 하늘 두레박에 넘실거릴 때 /

이남박 가득 하얀 햅쌀 / 일렁이며 돌 고르던 마음 / 아! 어머니 마음

 

 

 

▲ 골진 ‘이남박’은 쌀의 돌을 고르던 어머니의 마음일 것

 

 

이는 신수정 시인의 <이남박>이란 시입니다. ‘이남박’은 예전엔 어느 집에나 있던 물건입니다. 쌀, 보리 같은 곡식을 씻거나 돌을 일 때 쓰는 물건이지요. '이남박'을 북한에서는 '쌀함박', 강원도는 '남박' 또는 '쌀름박', 경상북도는 '반팅이'라고 불렀습니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지만, 대체로 윗지름 30∼70㎝, 깊이 15㎝, 바닥지름 15∼20㎝가량이고, 안쪽에는 여러 줄의 골이 가늘게 패어 있어서 쌀을 씻을 때 골이 진 부분에서 가벼운 마찰이 생겨 돌 등을 걸러내고 곡식을 깨끗이 씻을 수 있지요.

 

지금은 ‘석발기’라는 돌 고르는 기계가 있어 쌀에 돌이 섞이는 일이 없지만, 예전엔 자그마한 돌이나 잔모래가 으레 섞이곤 해서 쌀을 잘 일어야 했기에 이남박은 꼭 있어야 하는 조리기구였습니다. 한 그릇의 밥이 밥상에 오르려면 우물가로 함지박에 쌀을 이고 나가 조리로 인 다음 이남박에 담아 졸졸졸 물을 여러 번 흘려보내야 밥에 돌이 들어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남박의 골진 주름을 보자니 예전 어머니들의 고생이 골골이 묻어 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