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3322. 관서 지방의 첫 관문 고양 벽제관터

튼씩이 2016. 7. 1. 08:45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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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7. 1.



“새벽에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오니 백관들과 인마(人馬) 등이 대궐 뜰을 가득 메웠다. 이날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상과 동궁은 말을 타고 중전 등은 뚜껑 있는 교자를 탔었는데 홍제원(洪濟院)에 이르러 비가 심해지자 숙의(淑儀) 이하는 교자를 버리고 말을 탔다. 궁인(宮人)들은 모두 통곡하면서 걸어서 따라갔으며 종친과 호종하는 문무관은 그 수가 1백 명도 되지 않았다. 점심을 벽제관(碧蹄館)에서 먹는데 임금과 왕비의 반찬은 겨우 준비되었으나 동궁은 반찬도 없었다.”

이는 《선조실록》 25년(1592년) 4월 30일 기록으로 선조 일행이 임진왜란을 당해 피난길에 오른 내용입니다. 선조 일행은 궁궐을 나와 벽제관에서 점심을 먹은 모양입니다만 원래 벽제관은 우리나라에 오는 중국 사신의 공용 숙박시설로 쓰기 위해 성종 7년(1476) 11월에 세운 것입니다. 중국 사신들은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예를 갖추어 서울에 들어가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지요.

벽제관은 중국으로 가는 큰 길에 설치된 첫 관문으로 임금이 중국 사신을 친히 배웅하고 맞이하던 모화관에 버금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이끄는 군대와 왜군과의 벽제관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으로 현재 고양시 고양동에 있는 벽제관 터는 인조 3년(1625)에 고양군을 옮길 때 세운 객관이었습니다만 한국전쟁으로 그만 불타버리고 지금은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옛 얼레빗 (2012-07-04)



2335. 조선의 임금들, 더위에 죄수들 걱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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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불볕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서갈 생각을 하고 여름을 어떻게 날 것인가 걱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조정은 무더운 여름날 죄수들을 걱정합니다. 정조실록 3년(1779) 4월 18일 자 기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을 형벌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본디 백성으로 하여금 선(善)한 데로 옮겨가게끔 하려고 하는 것이요, 또 백성을 잘살게 하는 방도에 따라 죽이려는 것이다. 의도가 진실로 불쌍히 여기는 데 있다면 고법(古法)에 없다는 데 구애되어 깨우쳐 인도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 이 뒤로 죄수를 국문할 적에는 친국(親鞫)·정국(庭鞫)을 막론하고 비가 오거나 극심한 더위를 만났을 때에는 공사(供辭)를 받고 신문하고 추국하는 곳에 짚으로 집을 지어 죄수들로 하여금 숨을 돌리고 기운을 차리게 하여 말을 제대로 하고 실정을 죄다 진술할 수 있게 하라.”

예전 일이지만 죄수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런가 하면 세종실록 15년(1433) 6월 3일 자 기록에는 “이제 온 포로가 이렇게 혹심한 더위에 털옷이나 핫옷을 입고 있으므로 더위병에 걸릴까 걱정되오니, 제용감으로 하여금 흰 베로 홑옷을 만들어서 각각 한 벌씩 주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내용도 보입니다. 그리고 날씨가 더워지면 가벼운 죄를 지은 죄수를 풀어주라고 지시하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참 많이 보입니다. 절대권력을 쥔 임금도 더위에 피서갈 생각보다는 죄수들의 걱정을 했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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