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491호) 발해 외면하는 통일신라 대신 남북국시대로

튼씩이 2020. 12. 15. 07:55

“발해사에 따르면 서쪽으로 거란에게 책망하여 돌려받고 북쪽으로 여진에게 책망하여 돌려받아 우리 강토를 잃지 않고 동양 세계에 일대 강국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거늘, 바로 고려의 문인 학자들이 이를 타인의 강토로 등한시하여 5경 15부의 빛나는 판도를 이역에 빠지게 하고 동남쪽 한 모퉁이로 축소되어 약소한 나라를 스스로 만들었으니, 이것이 그 죄의 하나이다."

 

 

 

▲ 남북국시대 강역도 ⓒ KJS615 / wikipedia | CC BY-SA 3.0

 

 

 

이 글은 〈제국신문〉과 함께 한말의 대표적인 민족지였던 <황성신문>의 1910년 4월 28자 논설 '발해고를 읽다' 일부입니다. 발해(渤海)는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군으로 공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고구려의 유민들과 그 지역의 또 다른 한민족 계열의 사람들이 고구려의 영토 위에 다시 세웠던 왕조로 698년부터 926년까지 고조선과 고구려의 고토인 남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지방에서 광대한 영토와 한민족의 문화를 계승하면서 존재했던 나라입니다. 또 발해는 고구려의 후신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독자적인 연호를 쓰는 등 천자의 제국으로 우뚝 서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발해왕은 일본에 보내는 국서에서 자신을 '고(구)려국왕'이라 했고, 일본에 왔던 발해의 역대 사신들은 대부분 고씨를 비롯한 고구려계 성씨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신라 중심 사고에 젖어 조선 후기 유득공이 ‘남북국시대’라는 인식으로 《발해고(渤海考)》를 쓰기 전까지는 우리 역사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도 《독사신론(讀史新論)》에서 신라ㆍ발해 양국시대를 외쳤지만, 지금도 우리 역사학계의 주류는 <통일신라시대>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옛 발해땅을 자국의 영토에 포함하고 있는 중국과 소련은 발해사를 자국의 지방사로 서술하면서 한국사의 일부로 인정치 않고 있지요.

 

 

 

▲ 조선 후기 유득공은 《발해고(渤海考)》라는 책을 통해 처음 남북국시대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