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골’ 하면 어렸을 적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남의 집 볏가리에 불을 질러 쌀가마니나 물어 주고, 쟁기 보습을 엿으로 바꿔 먹은 어린 필자에게 어머니는 “야, 이눔아! 너 땀시 {생골이} 다 아푸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셨다. 그때는 ‘생골’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생골’은 ‘아무런 이유 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생(生)-’과 ‘골’이 결합된 말로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아픈 머리’를 뜻한다. 물론 이때의 ‘골’은 한자어 ‘골(骨)’이 아니라 ‘뇌(腦)’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이러한 접두사 ‘생-’이 결합된 말로는 ‘생골치’, ‘생째증(생짜증)’ 등을 들 수 있다. ‘생골치’는 《조선말대사전(증보판)》(2006)에 실려 있는 말로 ‘생골’과 같은 말이며, ‘생째증’은 강원도 영동 지방의 사투리로 ‘아무런 이유 없이 나는 짜증’을 말한다.
‘생골’은 주로 ‘아프다’나 ‘쑤시다’와 어울려 쓰인다.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가 되뇌시던 ‘생골’의 무게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요즘은 생골이 아픈 일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생골’은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서는 ‘알골’이라고도 한다. ‘알골’은 ‘겉을 덮어 싼 것이나 딸린 것을 제거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알-’과 ‘골’이 결합된 말이다.
이러한 접사 ‘알-’이 결합된 말로 ‘알쿠젱이’나 ‘알가지’ 등을 들 수 있는데, ‘알쿠젱이’는 강원 영동 지역에서, ‘알가지’는 전북 지역에서 쓰는 말이다. 이들은 모두 ‘잔가지나 이파리가 달려 있지 않은 나뭇가지’를 뜻하는 말이다.
북한과 조선족 사회에서만 쓰이는 말로 ‘패뜩골’이라는 말도 있다. ‘패뜩골’은 ‘어떤 생각이 갑자기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패뜩(<파뜩)’과 ‘골’이 결합된 말로, ‘순간적으로 빨리 돌아가는 머리, 또는 그런 머리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패뜩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잔머리’와는 어감이 다르다. ‘잔머리’는 부정적인 뜻만 가지고 있지만 ‘패뜩골’은 긍정적인 뜻을 내포하는 경우도 있다.
‘알골’과 ‘생골’, ‘패뜩골’ 좀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드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도 잘 살려 써서 우리의 언어생활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오늘도 ‘패뜩골’을 돌려 원고를 마무리한다.
글: 이길재(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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