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오늘날 경주) 밝은 밤에 밤늦게 노니다가 /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 가랑이가 넷이도다 / 둘은 나의 것이었고 / 둘은 누구의 것인가? / 본디 내 것이지만 /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오?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처용가>입니다. 이 처용가를 바탕으로 한 궁중무용 ‘처용무(處容舞)’가 있습니다. 처용무는 원래 궁중 잔치에서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빌거나 음력 섣달 그믐날 나례에서 복을 빌면서 춘 춤이었지요.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處容郞 望海寺)」 조에 보면, 동해 용왕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에게서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나옵니다. 그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처용무는 동서남북과 가운데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흰색·파랑·검정·빨강·노랑 옷을 입은 남자 5명이 추지요.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하여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춤사위는 화려하고 현란하며, 당당하고 활기찬 움직임 속에서 씩씩하고 호탕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처용무는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후기까지는 한 사람이 춤을 추었으나 조선 세종 때에 이르러 지금과 같이 다섯 사람으로 구성되었고, 성종 때에는 더욱 발전하여 궁중의식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가 1920년대 말 이왕직 아악부가 창덕궁에서 공연하기 위해 재현한 것을 계기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지요. 처용무는 가면과 옷·음악·춤이 어우러진 수준 높은 무용예술로,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그 맥을 즈믄 해(천 년) 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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